[ART+CULTURE 18/19 WINTER SPECIAL]_‘묘법의 영도(零度)’를 향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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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2, 2019

에디터 고성연 | 글 심은록(파리 PAF 미술 축제 감독)

박서보에게서 롤랑 바르트를 읽다



‘묘법의 영도(零度)’를 향한 여정
요즘 들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지구촌을 수놓는 글로벌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박서보. 단색화에 대한 관심이 꺾이지 않았느냐는 일각의 목소리가 무색할 정도로 그를 향한 러브콜은 여전하다. 현 시장가가 반드시 작품의 가치를 규정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경매가 기록도 지속적으로 경신 중이다. 지난해 말 뉴욕에서는 근작 위주로, 홍콩에서는 초기작으로 구성된 개인전을 가진 뒤 올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첫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인 박서보의 기나긴 창조적 여정, 그 뿌리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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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부터 서구에서는 소리가 있는 ‘말’과 손으로 써야 하는 ‘글’의 싸움이 시작됐다. 동양에서는 ‘침묵’이 금이라면, 서구에서는 확실히 ‘웅변’이 금이다. 그래서 서구의 언어는 논리적, 산문적이라면, 동양의 언어는 은유적, 시적이다. 서구 역사에서 소크라테스, 데모스테네스, 키케로 등 말을 잘한 웅변가(철학자)의 이름은 무수히 떠오르지만, 글씨를 잘 쓴 사람의 이름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동양사를 보노라면 왕희지, 구양순, 안진경, 가깝게는 추사, 여초, 소헌 등의 사상은 잘 기억나지 않는 반면 글씨체는 익숙한 편이다.
서구 사상가들은 플라톤 이래 ‘음성(로고스, 이성)’이 세계를 지배하는 바람에 1, 2차 세계대전 같은 인류 최악의 비극을 초래했다고 여겼다. 이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함께, ‘글’에 대한 중요성이 프랑스 사상가를 중심으로 제기되었는데, 그 가운데 20세기 프랑스가 낳은 지성이자 기호학의 대가로 통하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있었다. 한국 현대미술계를 이끄는 작가 중 하나인 박서보는 바르트의 저서 <글쓰기(프랑스어 e´criture, 에크리튀르)의 영도>(1953)에서 자신의 작품명인 ‘묘법(描法 에크리튀르)’을 차용해 1967년부터 현재까지 작업하고 있다.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실행한 ‘쓰기에 대한 다양한 실험’에 세계적인 미술가들이 참여했고, 그 흐름에 박서보도 합류한 셈이다.



글쓰기와 요리 삼각형
제목 ‘묘법’은 롤랑 바르트에게서 차용했지만, 실제 그림 자체의 영감은 박서보의 아들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는 1967년 ‘아들이 한글 쓰기 연습을 하다가 잘 안 되니까 연필로 여러 번 긋는 것을 보고 착안’했다. 어쩌면 그는 아들의 모습에서 자신이 서예나 한국화를 시작했을 때를 떠올렸을 수도 있다. 여러 번 반복하며 글자의 내용보다는 형태에 가깝게 그리려고 자세를 바로잡는 ‘몸의 언어’를 쓰는 모습 말이다. 서구 사상가들은 언어를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로만 분류해 논쟁했다면, 마티에르(물질, 재료)를 늘 사용해야 하는 미술가들은 의미보다 신체와의 직접적 관련성이 더 중요한 ‘몸의 언어’를 발견하고 발전시켰다.
예를 들어 ‘청색 모노크롬’ 화가로 통하는 이브 클렝(Yves Klein)은 여성의 나신을 붓처럼 사용하거나 인체 탁본을 했다(‘인체 측정(Anthropome´tries)’, etc., 1958~60). 백남준은 자신의 머리카락에 먹물을 묻혀 화선지 위에 굵고 긴 선을 그렸다(‘머리를 위한 선(禪)’, 1962). 이를 러시아 출신의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Roman Jakobson)의 ‘음운 삼각형’에서 착안한 클로드 레비 슈트라우스(Claude Levi Strauss, 구조주의 인류학의 창시자)의 ‘요리 삼각형’과 비교해볼 수 있겠다. 간단히 말하자면, 레비 슈트라우스는 음식을 날것과 요리된(익힌) 것, 썩힌(발효된) 것으로 구분했다. 백남준이나 이브 클렝의 글쓰기는 자연, 즉 몸을 그대로 도구 없이 사용하는 ‘날것(cru)’의 강함과 에너지의 분출을 보여준다. 반면 사이 톰블리, 안토니 타피에스 같은 작가들의 그림은 아주 고급진 용기가 필요한 ‘익힌 것(cuit)’의 고상함과 운율을 보여준다. 오래된 담벼락의 금이나 깊은 산속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오솔길처럼 그렇게 쓰기의 자취를 남긴다. 신체성의 중첩을 보여주는 이우환의 쓰기는 확실히 ‘발효된(fermente´ ou Pourri)’ 맛이다.
박서보의 경우는 어떨까? 유화물감을 캔버스에 칠한 뒤 물감이 마르기 전에 연필이나 철필로 선을 그리는 1970년대 ‘초기 묘법’ 작품에서는 ‘익힌 맛’이 난다. 반면, 1982년 한지를 사용한 ‘중기 묘법’부터는 한지의 물질성과 동양화의 묘법 정신이 중첩되며, 조금도 느끼하지 않은 담백한 ‘발효된 맛’, 즉 자연의 개입으로 오랫동안 숙성된 맛이 난다. 그는 한지를 오랜 시간 물에 불려 캔버스에 붙이고, 밀고, 긁는 행위를 수없이 반복한다. 한지를 캔버스 위에 여러 겹 붙인 후, 굵은 연필이나 뾰족한 도구로 되풀이해서 선을 긋는다. 묘법 작업 과정을 보면, 쓰면서 지우고, 쌓으면서 긁어낸다. 쓰기만, 혹은 쌓기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쓰기’에는 이미 ‘지우기’가 포함되고, 긁어내기 위해 쌓는다.
2000년부터 박서보의 무채 묘법은 유채 묘법으로 바뀌는데, 그 배경에는 현대미술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꽤 잘 알려진 일화가 있다. 그가 전시차 일본 도쿄에 있는 화랑을 방문했을 때 현지 관광을 즐길 기회가 있었다. 그때 박서보는 단풍으로 물든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씬 젖어들었다. 산이 온통 붉게 물들었는데, 그 붉은색은 단순한 붉은색이 아니었다. 바람이나 햇빛의 강약에 시시각각 섬세하게 변화하는 색감을 새삼 포착한 것이다. 2014년 11월 파리 페로탱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필자는 그의 붉은 톤 그림을 가리키며 단풍이 그런 ‘붉은색’이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불그스름한 색’이라고 수정해줬다.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색이기에 불그스름한 색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뭔가 어정쩡한 느낌, 그러나 동시에 이것이기도 저것이기도 한 포용적인 표현이다.



영도와 비움
박서보가 바르트의 에크리튀르를 일반적인 번역인 ‘글쓰기’가 아니라, ‘묘법’이라고 표현한 데는 깊은 의미가 있다. 그의 그림은 ‘선’으로 이루어진 선묘법을 사용한 작품인데, 이는 서예나 동양화에 관심이 없다면 낯선 용어일 수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형식화된 선묘법은 일반적으로 18개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구륵묘법(鉤勒描法)’은 ‘형을 윤곽선만으로 그려서 표현하고 선의 아름다움이 존중’되는 방법이다. 그 외에도 ‘몰골묘법(沒骨描法)’, ‘백묘법(白描法)’ 등이 있다. 이처럼 하나의 선을 긋는 데도 때로는 아름다움이 더 존중되고, 때로는 ‘대교약졸(大巧若拙)’과 같이 일부러 이를 감추거나 서툴게 하며, 충분히 발효될 때까지 오랜 시간 수련을 거친다. 박서보도 “선비들이 시서화를 하는데, 대가가 되겠다는 목적보다 수신 과정으로 삼듯, 내 작업도 마찬가지”라고 늘 강조한다.
바르트의 ‘영도’는 박서보에게서는 ‘승려의 수행과 같이 수없이 반복되는 행위’를 통한 ‘비움’으로 재해석된다. 바르트에게 글쓰기란 ‘글쓰기를 하지 않는 글쓰기(e´criture sans e´criture)’다. 박서보는 그림을 그리면서 지우고, 채우면서 비워내 ‘순수한 비움 그 자체’에 이르고자 한다.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을 실행하듯, 박서보도 ‘묘법의 0도’를 실행한다. 그래서 바르트의 책을 두고 독자들이 폭넓은 해석을 하듯이, 박서보의 작품 앞에서 관람객은 30도의 뜨거운 감동에 흠씬 젖을 수도, 영하 10도의 추상 같은 비판성에 몸을 떨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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