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느리게 산책하기, 건축과 미술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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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 2026

글 고성연(상하이 현지 취재)

상하이를 생각하면 마천루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황푸 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의 푸둥에는 동방명주와 상하이 타워 같은 초고층 빌딩이 솟아 있고, 서쪽 푸시의 와이탄에는 19세기 말부터 형성된 유럽풍 건축물이 늘어서 있다. 서로 다른 시대의 도시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풍경은 상하이의 가장 강력한 이미지다. 하지만 조금 천천히 걸어보면 다른 모습이 보인다. 상하이의 매력은 거대한 건물 자체보다 그 사이를 이어주는 길과 공원, 강변, 오래된 구조물과 새로운 건축물의 관계에 있다. 도시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산업 시설이 문화 공간으로 바뀌고, 미술관이 공원으로 열리며, 오래된 집과 골목에 새로운 삶이 들어오는 장면을 만나게 되는데, 마치 서로 다른 시간이 함께 살아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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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번드, 산업의 기억이 예술과 산책으로
상하이의 날씨를 가리켜 흔히 ‘겨울에는 습하게 춥고, 여름에는 습하게 덥다’고 한다. 그런 ‘습습한’ 도시에서 8월 초 건축 산책이 가능했던 것은 날씨의 고마운 변덕 덕분이었다. 태풍을 앞둬서인지 은근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을 타고 의도치 않게 거의 일주일이나 이어진 산책은 출장길에 전시 관람차 들른 롱 뮤지엄 웨스트번드에서 시작됐다. 사실 롱 뮤지엄 웨스트번드는 건물 안에서 전시를 보고 돌아가는 미술관이라기보다, 건물 밖으로 사람의 걸음을 이어주는 미술관에 가깝다. 이곳을 설계한 아틀리에 데샤우스의 류이춘은 과거 석탄을 실어 나르던 부두의 하역 구조물을 없애지 않고 건축의 일부로 활용했다. 옛 구조물은 새로운 건축과 엮여 진입 동선이 되고, 미술관 앞의 열린 공간은 웨스트번드 수변 공원으로 이어진다.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술관과 공원, 강변을 하나의 동선으로 만든 것이다. 실제로 전시를 보고 나오자, 원래는 다른 일정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바깥을 향해 뻗어 있는 길과 수변 공원이 마치 ‘조금 더 걸어보라’고 권하는 듯했다. 나무 데크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자 황푸 강 건너편으로 상하이의 마천루가 펼쳐졌다. 강바람을 맞으며 걷다 결국 신발을 벗고 맨발이 됐다.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끈적이지 않는 데크 바닥의 감촉,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 멀리 펼쳐진 도시 풍경.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산책이었지만 그 순간 상하이라는 도시가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시간을 정해놓고 움직이는 여행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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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걷다 보니 이번에는 웨스트번드 뮤지엄이 나타났다. 일부러 찾아간 것이 아니라, 걷다가 마주쳤다. 마침 파리 퐁피두센터와의 협력 전시가 열리고 있어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 처음으로 이번에는 상하이를 제대로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웨스트번드 뮤지엄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했다. 특히 2023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의외일 수 있다. 몇 년 전 처음 이 건물을 마주했을 때만 해도 ‘생각보다 심심하네’ 싶었다. 건물은 얌전하고 강변 풍경 속에 거의 배경처럼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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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에는 강변을 따라 한참 걸어본 다음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건물이 앞에 나서지 않으니 시선은 자연스럽게 강으로, 공원으로, 주변 건축물로 향한다. 건축이 주인공이 아니라 도시의 배경이 되는 것.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치퍼필드의 구상이 한참을 걸은 뒤에야 마음에 와닿았다. 조금 더 걸으면 둥글고 거대한 탱크들이 나타난다. 과거 항공유를 저장하던 시설이 전시와 문화 공간으로 바뀐 ‘탱크 상하이’다. 기능을 잃은 산업 시설 사이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걷고, 그 길은 다시 강변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건축과 미술, 공원과 산책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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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사이에 둔 두 시대
“오늘날 세계에서 이처럼 다양한 건축물이 운집하여, 우뚝 선 채 서로를 비추고 있는 도시는 상하이 말고는 없을 것이다.” <상하이 모던>을 읽으며 만났던 문장이 와이탄에 서자 실감 났다. 황푸 강을 사이에 두고 푸시는 19세기의 도시를, 푸둥은 21세기의 미래를 보여준다. 와이탄의 오래된 건물들을 등지고 강을 바라보면 동방명주와 상하이 세계 금융 센터, 진마오 타워, 상하이 타워가 차례로 시야에 들어온다. 한쪽에는 국제도시 상하이를 만들었던 과거가, 다른 한쪽에는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조성된 미래 도시가 있다. 와이탄에 서서 강을 바라보는 순간, 상하이의 과거와 현재가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온다. 서로 다른 시대가 지워지거나 교체된 것이 아니라 강을 사이에 두고 공존하는 것이다.

푸둥으로 건너가면 도시를 걷는 방식도 달라진다. 오래된 건물 사이의 골목 대신 거대한 건축물 사이를 어떻게 걸어갈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데크와 광장, 지상과 지하의 보행로가 서로 연결되면서 마천루 사이에서도 사람의 속도로 도시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이 만들어졌다. 그 흐름을 따라가다 만난 푸둥 미술관은 장 누벨이 설계했다. 황푸 강을 향해 열린 거대한 유리 면을 통해 와이탄의 오래된 건물과 강물, 강 위를 오가는 배와 사람의 움직임을 전시장 안으로 끌어들인다. 미술관이 도시를 바라보는 창이면서 동시에 도시의 일부가 되는 방식이다.

조금 더 걸으면 상하이 박물관 동관이 나온다. 세기 공원의 녹음과 맞닿은 이곳에서는 광장과 건물, 공원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제야 푸둥의 스카이라인이 단순히 높은 건물들의 집합이 아니라 미술관과 박물관, 공원과 광장까지 연결된 하나의 도시 풍경이라는 사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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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채의 집에서 만난 상하이
다시 오래된 상하이로 돌아와보자. 상하이는 애초부터 여러 세계가 부딪히며 형성된 도시였다. 중국 최대 항구로 성장한 이곳에는 조계가 형성되며 서구의 건축과 생활 방식이 들어왔고, 와이탄의 화려한 건축은 국제도시의 얼굴인 동시에 식민주의의 흔적이기도 했다. 스쿠먼(石庫門)은 그런 근대 상하이에서 태어난 혼합의 결과물이다. 중국 전통 주거의 중정 구성과 서구식 연립주택이 결합된 상하이 특유의 주거 형식으로, 좁은 룽탕(弄堂)을 사이에 두고 집이 이어졌다. 스쿠먼에서 중요한 것은 집 한 채의 형태보다 집과 집 사이의 골목이었다. 사람들이 만나고 아이들이 뛰어놀며 일상이 펼쳐지는, 집과 도시 사이의 반공공적 공간이었다. 그래서 스쿠먼은 단순한 건축 유형을 넘어 근대 상하이의 삶을 담은 도시의 그릇이었다. 상하이 마당루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역시 스쿠먼 가운데 하나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집이었던 공간이 독립운동가들에게는 나라의 독립을 논하고 준비하던 장소였다. 그런 스쿠먼이 도시가 커지면서 많이 사라졌다. 남은 공간들은 신톈디에서는 상업·문화 공간으로, 톈즈팡에서는 작업실과 숍, 카페가 들어선 골목으로, 지안예리에서는 호텔로 이용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러 채의 집이 이어진 골목이 아니라, 한 채의 고택을 찾아가본다. 프라다 롱자이(Prada Rong Zhai)이다. 1918년에 지은 롱자이는 중국 기업가 룽쭝징 가문의 저택이었다. 쇠락했던 이 고택을 프라다가 복원해 2017년 다시 열었고, 이후 전시와 문화 행사를 통해 새로운 삶을 이어왔다. 그리고 2025년에는 왕가위의 작업이 이 공간에 더해졌다. 프라다와 협업한 ‘미샹 프라다 롱자이(Mi Shang Prada Rong Zhai)’는 레스토랑 하나를 더한 것이 아니라 영화와 미술, 디자인과 미식을 저택의 역사 위에 포개놓은 새로운 문화 플랫폼이다. 왕가위의 영화적 미학과 상하이풍 목판화, 프라다의 아트 컬렉션이 오래된 방과 복도에 겹쳐지며 시간을 품은 공간에 오묘한 표정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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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침이 빚어내는 풍경
상하이를 걷는 동안 자꾸 눈에 들어온 것은 건축물의 형태보다 그 안팎에서 이어지는 삶이었다. 오래된 공장은 미술관이 되고, 미술관은 공원과 강변으로 발걸음이 향하게 하고, 낡은 골목에는 다시 가게와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런 생각을 하며 황푸 강 남쪽의 PSA를 찾았다. 상하이의 옛 발전소를 문화 예술 공간으로 바꾼 이곳에서는 리나 보 바르디의 건축을 소개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브라질에서 활동한 그녀는 기존 건물을 허물기보다, 이미 그곳에 쌓인 시간과 흔적을 새로운 삶 속에 끌어들이는 건축을 했다. 상파울루의 SESC 폼페이아가 대표적이다. 원래 드럼통 공장이었던 건물 구조를 남겨두고 그 안팎에 스포츠와 문화, 휴식과 만남을 위한 공간을 새롭게 조성했다. 공장으로 들어오던 길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가 됐다. 건축을 보존하는 일이 곧 사람들의 삶을 다시 불러들이는 일이 된 셈이다.

이 전시를 보고 나오니 앞서 보았던 상하이 풍경들이 다시 떠올랐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한자리에 있고, 중국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이 섞이고, 공장과 저택과 골목이 저마다의 시간을 품은 채 다른 쓰임으로 살아 있는 것. 저마다 다른 장소였지만, 과거를 지워 없애고 새것으로 바꾸기보다 그 위에 다른 시간이 포개져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해외 출장길에 만난 일본 기자의 말도 그제야 이해할 것 같았다. “난 상하이가 세상에서 제일 멋진 도시라고 생각해.” 처음에는 조금 과장된 도시 예찬처럼 들렸다. 하지만 여러 날 상하이를 걸어보고 나니 그가 말한 ‘멋’이 무엇인지 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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