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23-24 Winter SPECIAL] 가장 사적인 ‘취향 페어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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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3, 2024

글 김수진(프리랜스 에디터, 디블렌트 CD)


요즘 가장 흥미로운 문화가 뒤섞이고 있는 곳은 이야기가 가득한 ‘공간’ 아닐까. 가장 사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공간에서는 특별한 ‘취향 페어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공간이 특정한 작품과 만나면서 혹은 개인의 삶에서 비롯된 물건과 조우하면서 일으키는 짧은 정적은 묘한 낭만을 선사한다.
프랑스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장 프루베가 자신의 딸을 위해 만든 ‘시테 데스크’를 ‘나의 컬렉션’으로 만들기 위해 옥션을 기웃대거나, 나만 알고 싶은 신진 작가의 작품 한 점을 최초로 소장해 걸어두고 나와 작품 사이 특별한 관계를 만드는 것 등 다양한 예술 풍경으로 둘러싸인 ‘취향의 방’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멋진 주택을 개조해서 브랜드 쇼룸이나 갤러리로 쓰는 것은 물론 실제 거주자의 공간에서 사랑스러운 아트 페어링을 보여주는 ‘리빙룸’이 우리의 새로운 ‘취향 선생님’이 되어가고 있다. 당신은 어떤 리빙룸을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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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공간에서 누군가의 취향을 알게 됐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상대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좋아하는 음악 리스트나 위스키로 취향을 알기도 하지만, 상대의 침대 머리맡에 둔 특별한 작품이나 의자 한 점을 보았을 때야말로 진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기도 한다.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람만의 ‘믹스 매치 취향’을 확인했을 때 말이다. 공간의 무드로 캐릭터의 성격을 알 수 있었던 영화 <아이 엠 러브>와 <하우스 오브 구찌>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집이야말로 흉내 내지 않는 취향 페어링이 담긴 곳. 밀라노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빌라 네키 캄필리오’는 막대한 부를 축적한 네키,캄필리오 부부가 1930년대 가구부터 피카소, 모딜리아니, 마티스 등 20세기 걸작을 아우르는 공들인 컬렉팅으로 빚어낸 공간이다. 모든 요소에 자신들의 취향과 로망을 빌라에 마음껏 구현한 그들처럼 최근 사적인 (혹은 브랜드 차원의) 공간에 대한 ‘취향 페어링’이 두드러지는 분위기다.
멋진 공간과의 취향 페어링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자신만의 관점으로 셀렉트한 디자인 가구부터 아티스트의 작품, 바닥에 두는 소품 한 점에까지 페르소나를 부여해야 한다. 다양한 가구와 아트 컬렉션을 본인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예약제로 선보이기도 했던 <독일 미감>의 저자 박선영은 “남들이 다 알아보는 아이템이 아니라, 알아보지 못하는 디자인으로 시선을 돌린다는 건 ‘나와 그 가구’ 사이의 내밀한 관계를 만들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라면서 취향의 독자성을 강조한다. 그녀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독일 전역을 헤매며 특별한 리빙룸이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요즘의 사적인 공간에는 그녀처럼 삶의 방식과 취향에 따라 각자만의 예술적인 이야기가 담긴다. 얼마 전, 관점이 남다른 리빙 편집숍 마이알레의 우현미 소장이 실제 거주했던 이태원의 한 주택이 마이알레의 취향과 함께 색다른 문화가 펼쳐지는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녀의 취향을 실제로 느낄 수 있는 ‘리빙룸’이라는 공간인데, 좌식 문화와 유럽의 노매딕 라이프를 매치한 공간부터 식물로 가득한 연구소를 보는 듯한 거실, 빈티지 가구를 사랑하는 애호가의 공간 등을 취향별로 배치했다. 원오디너리맨션에서 공수한 샤를로트 페리앙의 벤치도 볼 수 있고 뉴욕의 시각 예술가 브라이스 와이머의 작품과 아키텍트 에디션의 라이언 갠더 등 마이 알레가 수집한 아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두오모앤코에서는 ‘remastered’라는 콘셉트로 사옥 내부를 새 단장해 선보였는데, 럭셔리 리빙에 대한 영감을 주는 실험적 공간이 눈에 띈다. 지하 3층에서는 다양한 브랜드의 욕실 부스를 중심으로 욕실 문화의 다양함을 보여주고, 지하 4층에는 개인 모임부터 팝업 스토어까지 다목적으로 활용 가능한 공간을 탄생시켰다. 독일의 주방 가구 회사인 해커도 최근 ‘해커 하우스’를 선보이며 주방 가구부터 리빙룸, 워크인 클로젯 등의 공간을 꾸며 매력적인 테일러 메이드 공간을 선보였다.
싱어송라이터의 취향이 전시와 공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안테나가 LG아트센터와 함께 ‘클럽 아크 with Antenna’라는 특별한 기획을 내놓았는데, 전시와 콘서트를 결합해 아티스트들의 ‘취향’을 친구처럼 보여준다. 정재형, 루시드폴, 박새별, 윤석철, 이진아, 샘김 등 6명의 싱어송라이터가 좋아하는 책, 직접 쓴 악보와 가사, 사랑하는 반려식물, 직접 사용하는 피아노 등을 가져와 거실 형태로 꾸미고, 관람객들은 그 거실을 바라보며 공연을 즐긴다. 즉흥연주 실력이 뛰어난 피아니스트 윤석철은 본인이 제일 아끼는 전자피아노를 들고 나와 마치 거실에 함께 있는 것처럼 위스키까지 마시면서 연주했는데, 아티스트의 일상과 취향을 함께 느끼면서 공연을 보는 건 색다른 감흥을 일깨우는 경험이었다.
지난해 출간된 가이 대븐포트의 저서 <스틸라이프(Still Life)>(박상미 역, 을유문화사)에는 이런 글이 있다. “정물(still life)은 일상생활이나 개인의 삶에서 온 물건을 다룬다. 이러한 일상적인 것들을 골라 어떤 표면 위에 올려놓고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는 순간, 정적이 생긴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시간이 멈추는 듯하고 이는 응시나 명상적 상태를 낳는다.” 사랑하는 것을 곁에 두라, 사랑하면 소유하라는 건 이 책의 번역가이자 갤러리스트인 박상미가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뭘 사랑할지, 소유란 무엇인지를 잘 알기 위해 우리는 취향을 기르고 가장 사적인 공간에 예술을 둔다. 약간은 미완성인 채로. 그 모든 중심을 ‘나와 당신의 이야기’에 둔다면 우리의 매일은 조금 더 반짝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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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 ’23-24 Winter SPECIAL]

01. Intro_다양성의 가치  보러 가기
02. Front Story_타이베이 비엔날레(Taipei Biennial) 2023_<Small World>_나와 너, 그들의 이야기… 우리의 화두  보러 가기
03. 가장 사적인 ‘취향 페어링’을 찾아서  보러 가기
04.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도시 자체로 ‘문화예술 특별구’  보러 가기
05.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세상의 시선을 스스로 바꿔나가는 예술  보러 가기
06.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고전부터 컨템퍼러리까지 아우르는 월드 클래스 컬렉션과 기획전  보러 가기
07.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비엔나에 신선함을 불어넣는 새 랜드마크들  보러 가기
08.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차근차근 보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가는 미술 시장 보러 가기
09. Interview with 마뉴엘 솔라노(Manuel Solano)_이해하고 이해받기 위한 여정 보러 가기
10. 뉴욕(New York) 리포트_지금 우리 미술을 향한, 세상의 달라진 시선  보러 가기
11. 시드니 아트스페이스(Artspace) 재개관을 맞이하며_Reflections on Art and Diversity  보러 가기
12. 하루키의 텍스트가 기억될,미래의 기념관이자 현재의 도서관  보러 가기
13. 마크 로스코(Mark Rothko)_화폭에 담긴 음률  보러 가기
14. 호시노야 구꽌(HOSHINOYA Guguan)__물, 바람이 만나는 계곡의 휴식  보러 가기
15. Exhibition in Focus  보러 가기
16. Remember the EXHIBITION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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