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건축물을 산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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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04, 2015

글 이소영(<사진 미술에 중독되다>, <서울, 그 카페 좋더라> 저자)

최근 해외여행에서 건축 거장들의 작품을 순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유명 건축물을 직접 보기 위해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에도 주목할 만한 스타 건축가의 작품이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듯해서 아쉽다. 건축 미학에 관심 있다면 알바루 시자, 도미니크 페로, 장 누벨, 안도 다다오, 구마 겐고 등 유명 건축가들의 건축물을 국내에서 감상하는 우리나라 건축 기행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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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심리학, 인간, 커뮤니티, 과학, 기술에 시적 요소까지 여러 가지가 응축된 종합예술이 바로 건축이다.” 건축가 렌초 피아노(Renzo Piano)는 건축은 아주 특별한 예술이라고 칭송했다. 그렇다. 건축물을 찬찬히 살펴본다는 것은 그 건물이 위치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사회적 성향까지 파악할 수 있는 숭고한 체험이기에, 예로부터 지성인들은 건축 기행을 떠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문화 예술과 관련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뿐 아니라, 감성을 풍성하게 해주는 오감 여행을 즐기는 이들에게 건축 여행은 매력적인 테마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간 떠나는 것이 어렵고, 육체적·정신적 부담으로 해외여행이 어렵다면 우리나라에서 주말마다 건축 순례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유명 건축가의 작품 중에서 비교적 최근에 선보인 건축물 몇 곳을 소개하려 한다.
스타 건축가들의 집결지, 제주

제주도는 몇 년 전부터 스타 건축가들의 작품이 경쟁이라도 하듯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주목할 만한 근래의 건축물로는 본태박물관, 아트 빌라스를 꼽을 수 있다. 본태박물관은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설계로 세워졌다. 안도 다다오의 트레이드마크인 노출 콘크리트에 색감이 따뜻한 한국의 전통 공예품을 매치해 담백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 건축물의 단아한 라인과 한국의 전통 담장이 현대와 전통의 서로 다른 공간을 부드럽게 연결한다. 제2박물관이 하이라이트인데, 처마 아래로 홀과 전시실이 연결되는 전망 좋은 공간으로, 안도 다다오가 자존심을 걸고 만든 명상실도 있다.
롯데 호텔에서 운영하는 럭셔리 리조트 아트 빌라스(Art Villas)는 도미니크 페로, 구마 겐고, 승효상, 이종호, DA 글로벌 그룹 등 무려 5명의 건축가가 참여한 건축물이다. 프랑스의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는 리조트 내부에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건물이 아닌 풍경의 재창조, 이것이 바로 아트 빌라스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입니다. 제주의 풍경을 완성하는 논과 밭, 폭포, 주상절리 등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도미니크 페로는 마치 그림을 그리듯 원형과 곡선의 패턴을 살려 이국적이면서도 독창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일본의 건축가 구마 겐고(硏吾)는 둥근 지붕 안에 제주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담은 아름다운 공간을 완성했다. 오름의 곡선으로 지붕을 이어 주변 전경과 조화를 이루는 유기적인 건축물은 포근함을 선사하며, 특히 히노키 욕조와 티 룸에는 일본인 건축가 특유의 정갈함이 묻어 있다. 구마 겐고는 이외에 NHN 춘천연수원 프로젝트, 안양 페이퍼 스네이크 등을 설계했으며, 도미니크 페로는 이화여자대학교 ECC(Ehwa Campus Complex)와 여수의 복합 문화 공간 예울마루를 디자인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 독일 베를린 올림픽경기장,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등 도전적 이미지의 작품을 설계한 도미니크 페로지만, 우리나라에서 선보인 작품은 다소 정숙하다. 이화여대 ECC는 평범한 대학 풍경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낯선 건축물일 수 있다. 땅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듯한 좌우대칭 구조지만, 실제로는 햇빛이 잘 드는 6층 건축물이다. 여수의 예울마루도 이화여대 ECC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선사하는 지형을 따라 흐르는 듯한 작품이다. 망마산 전망대와 공연장, 상설 전시장이 산과 바다가 동시에 보이는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다. 이화여대 ECC와 마찬가지로, 주요 공간은 지하에 있지만 햇빛이 잘 들어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또 이화여대 ECC와 예울마루는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유리 지붕에 태양전지 시스템을 설치해 건물 내에 필요한 전기를 일부 조달하며, 외벽의 열을 이동시키는 열 미로(thermal labyrinth) 시스템으로 공기를 이용해 건물의 실내 온도를 조절한다. 따라서 도미니크 페로 건축 산책에는 내외관 디자인 감상뿐 아니라 에너지 관리에 대한 고찰까지 수반되어야 이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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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거장들이 서울을 주목하는 이유
서울 역시 건축 거장들의 방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최근 개관한 비즈니스호텔 ‘신라 스테이 역삼’은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 피에로 리소니(Piero Lissoni)가 공간 디자인을 맡았다. 그의 디자인은 꼭 필요한 것으로만 구성하는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미학적 감성이 특징이다. 로비는 장식을 배제하고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미니멀리즘 콘셉트로 디자인했다. 다크 우드와 그레이스톤 등을 중심으로 해 차분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준다. 무채색 공간이지만 차가운 이미지를 주지 않는 것은 따뜻한 질감의 소파와 펜던트 조명, 도자기 소품이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피에로 리소니가 직접 디자인한 소파와 테이블도 배치되어 있다. 객실 역시 일반적인 비즈니스호텔과는 다르게 바닥에 원목 마루를 깔아 편안한 분위기를 풍기며, 욕실 벽면에도 모자이크 타일이 장식되어 있다. 세계 유명 호텔을 디자인한 피에로 리소니의 호텔을 서울에서도 만나볼 수 있어 반갑다. 소격동에 위치한 국제갤러리 3관은 기존 1, 2관에서 벗어나 실험적인 요소를 고려해 미국의 젊은 건축가 플로리안 아이덴버그(Florian Idenburg), 징 리우(Jing Liu)가 설계했다. 1, 2관 뒤편에 위치하며, 3관 건축 디자인 콘셉트와 작업 모델은 작품성을 인정받아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 영구 소장되었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 등 거장들의 작품을 소장한 곳으로 유명하다. 플로리안 아이덴버스와 징 리우는 겸재 정선의 수묵화 ‘장안연우’와 한국의 도자기 라인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물을 디자인했다고 한다. 가까이서 보면 직물과도 같이 촘촘한 메시(mesh)의 작은 금속 고리들이 그물처럼 기하학적 건축물의 외관을 뒤덮고 있는 형상인데, 이 스테인리스 스틸 베일은 시시각각 빛과 그림자를 만들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층고가 높고 채광창의 광량 조절이 가능해  회화, 영상, 설치 등 다채로운 전시를 더욱 매력적으로 소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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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누벨이 만든 사무실, 현대카드 디자인 랩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의 현대카드 디자인 랩은 직장인들에게는 가장 부러울 공간이다. 장 누벨이 만든 오피스라면 얼마나 근사할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2013년 밀라노 가구박람회를 방문한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과 장 누벨은 우연한 만남을 갖고, <홈 & 오피스> 전시장을 둘러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아부다비의 루브르 박물관 분관 등 대규모 프로젝트로 분주한 장 누벨이었지만, 현대카드의 디자인 랩 제안이 흥미로워서 기꺼이 수락했다고 한다. 기존 사무실에 큰 변화를 주지 않고, 거추장스러운 형식 뜯어내기와 빛 활용에 집중해 설계했다. 마감재의 피니시를 그대로 쓰길 원한 건축가의 의견대로 나무 바닥재 등을 다 뜯어내 콘크리트 바닥에 에폭시만 덮은 공간은 마치 창고 같다. 또 폐쇄적인 사무실 특유의 느낌을 없애기 위해 안에서만 보이는 원웨이 글라스를 사용해 외부의 빛이 내부로 충분히 들어올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사무실 전체가 아닌 일부 공간에만 빛이 들어오게 조절하면서 빛을 활용해 업무 집중도와 무드를 동시에 잡았다.
“현대카드 디자인 랩은 필요에 따라 각각의 장소, 업무 환경, 재고 관리, 때로는 숨겨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 장소, 사람 수에 따라 회의실을 합치거나 나눌 수 있는 유연성과 협업의 즐거움을 고려한 공간입니다. 또 사무 공간이자 만남의 공간이며, 지속적 대화의 공간이기도 하지요.” 장 누벨은 디자이너들이 ‘즐기고, 창조하고, 교환하며’ 이 공간을 사용함으로써 더 독창적인 결과를 도출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신년에 사무 공간 디자인을 고려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장 누벨이 만든 이곳을 관람하면 도움이 될 것. 장 누벨은 이미 삼성미술관 리움으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다. 삼성미술관 리움은 장 누벨, 렘 콜하스(Rem Koolhaas), 마리오 보타(Mario Botta)의 건축물로 각각 구성되어 있어 건축 애호가라면 꼭 방문해야 할 명소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플라토 미술관에서 건축 전시를 한 우리나라 건축가 조민석이 리움 건축가 중 한 명인 렘 콜하스의 수제자라는 사실. 조민석이 지난해 한국 최초로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차지한 데 스승의 가르침이 조금은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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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루 시자의 작품을 만나다

유럽에 여행 가는 많은 사람들이 가우디의 건축물 기행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유럽 건축 여행에서 안토니오 가우디(Antoni Gaudi) 다음으로 회자되는 건축가가 바로 알바루 시자(A´lvaro Siza)다. 이렇게 가우디만큼이나 유명한 건축가 알바루 시자의 작품이 우리나라에 3개나 있다는 것을 아는지? 포르투갈 출신의 알바루 시자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안양파빌리온, 아모레퍼시픽 연구원을 설계했다. 그는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거장’이라고 불리는 만큼 화려한 디자인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한다. 포르투 세할베스 현대미술관, 아베이루 대학교 도서관, 리스본 엑스포 파빌리온 등이 대표작이며, 1992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자연광을 끌어들인 다양한 곡면으로 이루어진 지상 3층, 지하 1층의 수려한 백색 건물이다.
안양파빌리온은 알바루 시자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설계한 건축물이다. 바라보는 위치마다 외부 풍경과 내부 공간을 다르게 체험할 수 있도록 독특한 비정형의 공간으로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그간 사용해오던 ‘알바루 시자 홀’이라는 이름 대신 2013년에 ‘안양파빌리온’이라는 새 이름으로 재개관했다.
안양파빌리온에는 공원도서관, 만들자연구실, 프로젝트 아카이브 등이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는 생존한 모든 스타 건축가들의 작품이 총집합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탈리아 건축가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KT 광화문 신사옥이 최근 완공되었고, 영국의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도 2016년 대전에 완공 예정인 한국타이어 테크노돔에 참여할 정도다. 노먼 포스터는 밀레니엄 브리지, 런던 시청, 뉴욕 허스트 타워 등 세계의 랜드마크를 설계한 아티스트로, 한국타이어 테크노돔 역시 우리나라의 명소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이테크 연구 시설답게 자원 재활용 시설을 활용한 에너지 절감과 자연 채광을 이용한 조명 최소화 등의 에너지 절감에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거장은 아니지만 젊은 부부 건축가 최성희, 로랑 페레라(Laurent Pereira)가 설계한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은 2014 김수근 건축상 수상과 영국 BBC가 ‘2014년 위대한 8대 신설 미술관’으로 선정해 주목받고 있다. 지난 4월 개관한 따끈따끈한 미술관이기에 건축물도 보고 미술 작품도 감상하는 주말 여행지로 추천할 만하다. 아이디어 전환이 필요한 날, 이국적인 랜드마크를 산책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가까이 두고도 알지 못했던 건축가의 작품을 도시 곳곳에서 발견하는 재미와 함께, 건축물 안의 콘텐츠는 덤이다. 건축가들의 해외 소재 작품과 비교해보는 센스까지 발휘해보자.

거장의 건축물을 산책하다”에 대한 1개의 생각

  1. 기사제목부터가 이목을 이끌기 충분한것같아요!! 현대적인 멋과 전통의미가 같이 있으니 너무 잘 어울리고 멋스럭네요!! 갈수록 정말 건축물들이 발전하고 감탄을자아내게하는것같아요~
  2. 현대카드 디자인 랩이 장 누벨의 작품이라니, 지날때마다 그 멋진 포스에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는 공간이죠.. 그 내부는 용도에 따라 변화가 가능 한 공간이라고 하니, 장 누벨의 '즐기고, 창조하고, 교환하고' 하는 의도에 딱 맞게 설계된 공간이라고 여겨집니다
  3. 현대카드 디자인랩 연구실에서 일할 디자이너들이 너무 부럽네요. 장누벨이 빛의건축가라는 별명에 맞게 빛을 잘 이용한것같네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많은 작품을 볼 수 있었다는것은 몰랐어요 특히 지방쪽은요! 건축탐방 가는 그 날까지 더 생겼으면 좋겠어요.우리나라에서도 스타 건축가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크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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