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미니멀리즘, 감성과 손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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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 2013

글 조명숙(전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 패션 칼럼니스트, 스타일리스트)

친환경주의와 착한 디자인을 지향하던 디자이너들이 드디어 그 해법을 찾은 듯 보인다. 단순하고 간결한 룩으로 정의되는 미니멀리즘에 내추럴함과 정교한 테일러링, 로맨틱함이 가미되었다. 올 S/S 시즌 전 세계를 강타할,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세계, 바로 2013년식 뉴 미니멀리즘이다.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복고 스타일
복고풍 레트로는 언제나 스타일에 좋은 영감을 준다. 재작년에 영화 <써니>, 걸 그룹 티아라의 ‘롤리 폴리’가 맞물려 디스코 스타일이 트렌드의 중심에 서기도 했고, 지난해에는 영화 <건축학 개론>,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성공에 따라 대대적인 1990년대 복고 바람이 불기도 했다. 더불어 아련한 추억의 노래,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까지 가세해, 사람들의 서정성과 향수에 불을 지폈다. 추억은 기업에는 훌륭한 마케팅 포인트 역할을 하고, 소비자에게는 거역하지 못하고 지갑을 열 수밖에 없도록 하는 구매 포인트가 된다. 특히 패션 관련 제품을 구입할 때 사람들은 이성적인 계산보다 감성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때문에 1980년대에 20대 황금기를 보냈던 사람들이 40대가 된 21세기 초반(당시 386세대라고 불렸다)에 디스코 문화의 프로듀서이자 소비자가 되었고, 디스코 열풍은 1980년대 스타일을 유행의 중심에 서게 했다. 커다란 안경, 반다나, 워싱 청바지, 체크무늬 셔츠, 그리고 맨투맨 셔츠와 파워 수트, 과장된 실루엣, 레이어드, 맥스 매치 스타일링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았던 이 유행도 이제 새로운 유행에 바통을 넘겨주게 되었다. 1990년대에 X세대로 불리던 젊은이들이 40대가 된 지금, 1990년대 복고로 트렌드의 주연이 바뀐 것. 1990년대도 어느새 저만치 물러난 추억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디스코 열풍에 이어 1990년대가 스타일 화두가 된 이유이다.
1990년대와 미니멀리즘
패션계 역사에서 1990년대는 그야말로 미니멀리즘의 시대였다. 왜 미니멀리즘이어야만 했을까? 그것은 패션의 진화와 변화 과정으로 설명된다. 한동안 긴 치마가 유행하다가 미니스커트가 돌아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들이 1980년대에 유행했던 과장된 실루엣과 화려한 색상, 장식적인 옷에 싫증을 느끼고 지쳐 있을 때쯤 등장한, 단순하고 슬림한 미니멀리즘은 새로움 그 자체였다. 1980년대에 대학 시절을 보낸 필자에게는 별명이 ‘뽕순이’인 친구가 있었다. 그땐 누구나 큼직한 어깨 패드를 얹은 재킷을 입고 다녔는데, 그 친구는 심지어 맨투맨 티셔츠 안에까지 패드를 넣어 입었다. 어깨가 넓을수록 얼굴이 작아 보였고, 패드의 사이즈만큼 자존심도 부풀어 오른 시절이었다. 지금 각광받는 앙상한 쇄골이나 꿀벅지, 식스팩보다 더 큰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그 박시(boxy)하고 화려한 스타일에는 맹점이 있었다. 무게중심이 맞지 않아 가분수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 프로포션이 좋지 않아 키가 작아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왜 전신 거울을 보지 않았는지 뒤늦은 후회가 밀려올 때쯤, 이를 해결해준 스타일이 바로 미니멀리즘 패션이었다. 어깨 패드가 점점 줄어들고 바지통과 스커트는 슬림해져서 전체적으로 호리호리한 스타일이 각광받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특정한 부분을 강조하기보다 전체적으로 슬림한 룩을 즐기게 되었다. 캘빈 클라인, 도나 카란, 질 샌더, 헬무트 랭, 프라다 등은 미니멀리즘을 세련되고 도시적으로 표현해 1990년대 가장 뜨거운 인기 디자이너로 급부상했다.
뉴 미니멀리즘의 서막이 열리다
2000년대 들어 패션은 빠르게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유행은 10년 주기로 변화한다는 게 통설이었는데, 지금은 시즌마다 새로운 스타일이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러 스타일이 서로 각축을 벌이는 시대가 되었다. 미니와 맥시가 동시에 등장하고, 통바지와 스키니 진이 함께 런웨이와 거리를 누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조짐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디자인을 모색하던 디자이너들이 라인을 간소화하면서 미니멀리즘의 세계를 노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디자인은 1990년대식의 단순한 미니멀이라기보다는 저마다의 개성과 테일러링에 공을 들인 것이었다. 오버사이즈 원피스나 재킷을 선보이는가 하면, 자연스러운 주름으로 디테일을 살리기도 하고, 바로크적인 요소로 장식성을 더하기도 했다. 어떤 디자이너들은 컬러에 힘을 실어 형광색이나 원색의 강렬함에 도전하거나, 이국적인 에스닉 패턴을 시도하기도 했다. 소재에 대한 새로운 시도 또한 돋보인다. 하늘거리는 투명한 소재와 다소 뻣뻣하고 두꺼운 가죽을 덧대어 이어 붙인다거나 천 조각을 종이접기 하듯 모양을 내 붙이고, 여러 가지 색상의 천을 콜라주하듯 이어 붙이는 등 다양한 아트 앤드 크래프트 기법이 동원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시도를 하기 위해 디자인은 더욱 간결해진다는 것. 이것이 바로 장식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던 1990년대의 미니멀리즘과 차별화되는 2013년식 뉴 미니멀리즘이다. 이는 미니멀리즘에 로맨티시즘을 첨가해 의상에 감성을 불어넣은 것이 특징으로 정교한 테일러링과 섬세한 디테일로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여기에 로맨틱한 요소를 버무린 스타일이다. 복잡한 패션에는 금세 피로감을 느끼고, 너무 단순한 디자인에는 싫증을 내는 게 패셔니스타들의 기본 생리인 점을 감안하면 심플함과 정교함이 어우러진 뉴 미니멀리즘이야말로 사람들의 변덕스러운 마음을 사로잡을 탁월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정교함, 그 패러독스한 패션의 신세계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는 2013 S/S 파리·뉴욕·밀라노 컬렉션은 그야말로 뉴 미니멀리즘의 전시장과도 같았다. 발렌시아가, 지방시, 디올, 생 로랑 파리, 발렌티노, 스텔라 매카트니, 랑방, 구찌, 프라다 등 셀 수 없이 많은 컬렉션에서는 장식을 배제한 심플하고 정갈한 룩들을 앞다투어 선보였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복고풍과 시적인 감수성, 창의성이 돋보이는 의상이 넘쳐났다. 입체적이고 건축적인 발렌시아가 본연의 디자인 세계로 돌아간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는 간소화한 라인에 새로운 소재를 실험하듯 양쪽 주름을 잡은 트위드, 나뭇잎 모양 실리콘 조각을 대입해 그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발망을 재정립하고 있는 신예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발망을 위한 세 번째 쇼에서 1990년대 초반의 과장된 스타일과 미니멀한 라인을 기본으로 진주와 자수 장식, 왕골 수공예품, 플라스틱 뼈대를 이용한 수공예 드레스로 패션계의 우려를 종식시켰다. 그런가 하면 1960년대 최고의 디자이너 브랜드 중 하나인 지방시를 책임지고 있는 리카르도 티시는 1960년대식 미니멀리즘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슬림하고 날씬해 보이는 튜닉 스타일에 넘실대는 러플로 여성스러움을 더했고, 자카드, 시폰, 실크 크레이프 등 새로운 소재에 메탈릭 장식으로 모던함과 순수함을 표현했다. 또 1990년대 미니멀리즘의 유행을 선도했던 프라다는 이번 시즌 재퍼니즘과 손잡았다. 레트로풍의 심플한 라인은 단순하게 디자인한 벚꽃 모티브, 새틴을 접어 만든 입체 재단 등으로 스포티와 엘레강스를 적절히 믹스한 룩을 선보여 역시 미니멀리즘의 여왕임을 입증했다. 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의 딸, 스텔라 매카트니는 메시 소재, 프린트 시폰 등 가벼운 시스루 룩을 적절히 믹스 매치한 경쾌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투명하고 맑으며, 유연한 소재와 넉넉한 실루엣, 스포티한 느낌까지, 그야말로 경쾌한 미니멀리즘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발렌티노의 치우리와 피치올리 역시 극도로 절제된 심플한 드레스를 패커팅 기법(두 천 사이를 새발뜨기로 연결한 스티치 기법)으로 디자인해 미니멀리즘의 단조로움에 쿠튀르 감성을 더했다.
새로운 패션, 달라진 라이프스타일
단순한 실루엣에 섬세한 감성을 녹여낸 이런 현상은 올 봄여름 패션계뿐만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까지 점령하고 대세로 자리매김할 기세다. 독특한 디자인과 감각적인 색상으로 스타일을 강조했던 가구 회사들은 자연주의를 바탕으로 기존의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나무나 가죽 등 천연 소재와 질감으로 안락하면서도 자연 친화적인 멋을 강조하고 있다. 에코 감성과 절제된 라인, 내추럴한 색감과 안정된 악센트 컬러가 적절히 조화되어 모던함과 심플함, 고급스러움까지 갖춘 북유럽풍 가구들은 가장 각광받는 아이템이 되었다. 변신 로봇처럼 유기적으로 변형 가능한 기능적인 고가 가구부터 DIY를 내세워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꽤 착한 가격의 소품까지, 선택의 폭도 다양하다.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무심한 듯하지만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헤어스타일이나 자칫 창백해 보일 수 있는, 한 듯 만 듯한 투명 메이크업이 대세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메이크업을 깨끗이 지우는 데 초점을 둔 클렌징 제품은 기계로 문지르거나, 솔을 이용하고 때론 거품 분사 방식 등을 이용한, 실로 다양한 제품이 러시를 이루고, 주름을 지우개처럼 펴준다는 링클 크림이 날개 돋힌 듯이 팔린다. 결광, 윤광, 꿀광을 만들어준다는 피부 톤 개선 파운데이션 역시 광택 피부 표현을 내세우며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헤어 제품 역시 마찬가지. 왁스나 헤어 젤 등 형태를 잡아주는 제품에 이어 머릿결 자체를 아름답게 가꾸어주는 에센스 제품이나 헤어 팩, 그리고 윤기를 더해주는 에센스 스프레이가 인기다. 얼마 전까지 블랙, 꽃무늬, 레드 등 감각적이고 화려한 모던 시크에 주안점을 두던 가전제품이나 싱크대 등 주방 가구 역시 다시 화이트 컬러의 순수함과 심플함으로 회귀하고 있다. 말 그대로 화이트 가전의 복귀인 셈. 달라진 점이라면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독특한 소재의 특징을 살리거나 펄이나 다이아몬드 느낌 등 수공예적 디테일로 고급스러움을 추구했다는 것. 이와 더불어 인테리어용품, 개인용 소형 가전제품, 컴퓨터, 자동차, 심지어는 애완용품까지 뉴 미니멀리즘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1990년대 스타일의 대표 주자인 미니멀리즘에 추억을 덧입히고, 21세기식 세련미와 실용성을 가미한 뉴 미니멀리즘은 에코 과학과 맞물려 거부할 수 없는 새로운 시대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이젠 화려하고 글래머러스한 여성이 아니라 차려입지 않은 듯 고급스럽고 품격 있어 보이는 여성, 대놓고 “나 비싼 거야”라고 으스대는 대신 은근한 멋이 녹아 있어 볼수록, 쓸수록 애착이 가는 제품에 마음이 간다. 이는 시대가 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서서히 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힐링’과 ‘착한 소비’가 화두인 요즘, 장식을 배제해 고급스럽고 자연 친화적인 소재, 과장되지 않은 슬림한 라인, 번쩍거리거나 요란하지 않은 차분한 톤, 안락한 느낌을 주는 내추럴한 색감, 아웃도어용을 겸할 수 있는 실용성, 여기에 한 듯 만 듯 생기 넘치는 메이크업까지, 뉴 미니멀리즘은 오늘날의 현상을 대표하는 시대적 흐름으로 당분간 우리 곁을 지킬 것이다.

뉴 미니멀리즘, 감성과 손잡다”에 대한 1개의 생각

  1. 최신 트랜드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어 유용한 기사였어요<! 시대의 흐름을 어느 정도는 따라가며 살아갈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해 주어 좋네요!
  2. 미니멀리즘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고 있었는데 과대포장을 줄이는 스타일이라는 표현으로 이해가 됩니다. 뽕순이 라는 별명이 재밌네요, 90년대 중반까지도 뽕이 큰 쟈켓을 입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덩치가 있어 보일려고 입은건데 지금생각하면 상체만 큰 숏다리로 보인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ㅎㅎ
  3. 뉴미니멀리즘이 뭘까 궁금해서 자세히 읽어봤어요. 디자이너들의 각자의 개성이 담기면서 기존의 스타일에서 간소화된 라인이라는 거네요. 복잡한 디자인은 가끔 봐야 예쁘고 단순한 디자인은 너무 자주 보면 질리게 마련! 기사내용처럼 심플과 정교함이 잘 매치되는 스타일이야말로 빠르게 변화하고 더더욱 다양함을 요구하는 현대인들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거 같네요.
  4. 심플함만 추구했던 미니멀리즘에 포인트를 가미한 것이 뉴미니멀리즘이라는 거네요~ 새로알게된 사실이예요. 이 개념 꼭 유념해둬야겠어요. 옷입을 때나 인테리어 할때 스타일을 정하는 기준이 될 것 같네요. 우선 낼 아침에 투머치하지 않게 단순함에 디테일한 요소를 살려 가지고 있는 옷들을 가지고 새롭게 스타일링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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