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도시’에서 반짝이는 이탈리아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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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 2025

글 고성연(파리 현지 취재)

불가리 호텔 파리(Bvlgari Hotel Paris)

파리가 여행자들의 선망을 받지 않았던 기억은 별로 없지만, 답답했던 팬데믹 시기에 ‘하늘길’이 정상 궤도로 돌아오면 찾고 싶은 글로벌 도시로도 단연 상위권에 올라 있었다. 실제로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이 선정한 세계 1백대 도시 순위에서 파리는 4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2024년 말 기준). 아마도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오랜 기간에 걸쳐 더욱 빛나는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기해온 덕도 있었을 터다. 한층 더 근사해진 도심의 호텔 풍경도 파리의 매력을 증폭시키는 데 한몫을 단단히 했는데, 그중에는 2021년 말 ‘파리의 동맥’으로 불리는 8구(센강 오른쪽)에 우아하게 둥지를 튼 불가리 호텔 파리(Bvlgari Hotel Paris)도 있다. 북쪽으로는 개선문, 남쪽으로는 콩코르드 광장을 사이에 두고 기다랗게 펼쳐진 샹젤리제 거리를 품고 있는 화려한 8구에서도, 풍요롭고도 섬세한 이탈리아의 럭셔리 감성이 매혹적으로 흐르는 럭셔리 호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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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곳곳에 투영되는 빛의 미학으로 유명한 파리 시내의 중심가인 8구에는 ‘황금 삼각지대(Golden Triangle)’라 불리는 동네가 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 이름일 샹젤리제(Champs-Élysées), 몽테뉴, 그리고 조르주 V 거리를 아우르는 표현이다. 이 가운데 샹젤리제와 가깝지만 마치 다른 동네에 온 듯 번잡스럽지 않은 조르주 V 거리의 한 자락에는 단아한 외관을 지닌 11층짜리 석조 건물 앞에 서 있는 도어맨들부터 다정다감하게 웃는 얼굴로 반겨주는(어쩐지 ‘이탤리언 감성’이 어린 듯한) 불가리 호텔 파리(Bvlgari Hotel Paris)가 자리하고 있다. 1884년 로마 중심부에서 탄생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불가리는 메리어트 호텔과 손잡고 밀라노, 런던, 발리, 도쿄 등에 걸쳐 꾸준히 공간을 확장해오며, 럭셔리 호텔 생태계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해왔다. 도도한 이미지의 파리 중심가에 로마의 햇살처럼 따사로운 이탈리아 감성이 어떻게 균형 있게 녹아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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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을 말하자면, 생각보다 편안하게 다가왔다. 온화한 베이지색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전반적으로 블랙 톤을 배경으로 감각적인 가구, 오브제와 더불어 1960년대 이 지역을 방문했던 소피아 로렌 같은 셀럽들의 사진으로 장식한 고혹적인 인테리어가 펼쳐지지만 ‘하이 주얼리 브랜드’라고 하면 곧잘 연상되는 특유의 화려함을 압도적으로 뽐내는 분위기보다는 은근하고 차분하게 매력을 발산하는 느낌이다. 자세히 뜯어보면 소품이나 조명 하나도 20세기를 수놓은 조 폰티(Gio Ponti)와 카를로 스카파(Carlo Scarpa) 같은 거장들의 혼이 담긴 작품이지만 말이다. 호텔 공간을 마주했을 때 시선을 절로 고정시키는 ‘잇 아이템’은 아무래도 로비의 은은한 실크 벽지를 배경으로 걸린 커다란 회화 작품이다. 묘한 눈빛을 한 여인의 초상화인데, 2022년 2월 2일에 별세한 이탈리아 배우 모니카 비티(Monica Vitti)를 그린 화가 얀페이밍(중국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다)의 작업이다.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1964년) 영화 〈붉은 사막〉에서 보여준 강렬한 존재감이 아직도 생생해 “차오(ciao)”라고 인사를 건네야 할 것 같은 그림 속 그녀는 이탈리아의 경제적 황금기였던 1960년대를 반영하듯 큼지막한 불가리 목걸이를 차고 있다. 그녀의 초상 아래 깔려 있는 대리석 바닥은 르네상스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로마의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영감받은 별 모양 패턴으로 수놓여 있다.
왠지 뇌쇄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로비나 라운지와 달리, 전반적인 객실 디자인은 ‘홈 스윗 홈’의 감성이 느껴진다. 전 세계 불가리 호텔의 디자인을 진두 지휘하고 있는 안토니오 치테리오(Antonio Citterio)와 파트리샤 비엘이 함께 이끄는 건축 스튜디오 ACPV가 맡았는데, 균형미 있는 가구부터 정갈히 소독된 담요, 부드럽고 가벼운 실내화에 이르기까지 산뜻한 우아함과 품격이 곳곳에 배어 있다. 특히 물 입자가 곱디고와 모공 하나하나를 부드럽게 다독여주는 듯한 샤워기의 놀라운 성능이랄지, 타월지 소재의 욕조용 베개, 몹시도 기분 좋은 감촉의 가볍고 포근한 실내화 등은 세심함의 미학을 일깨워준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웬만한 이슈가 아니면 대면할 필요 없이 발 빠르게 대응하는 ‘디지털 컨시어지’는 물론 밤이면 허브 티를 담은 보온병을 거실 탁자에 놓아두는 ‘우렁 각시’ 같은 웰니스 서비스도 작은 감동을 더해준다. 이 같은 ‘디테일의 차이’는 미식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미슐랭 3스타 셰프 니코 로미토(Niko Romito)가 이끄는 일 리스토란테(Il Ristorante – Niko Romito)에서는 이탈리아의 풍미를 살리되 자신만의 감성으로 재창조한 차원 높은 요리를 만날 수 있는데, 조식만 해도 1시간을 즐겨도 모자랄 듯 풍부하다. 일요일에 머무른다면 ‘환상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선데이 브런치’를 기억할 것을 당부하고 싶다. 매듭 모양으로 묶은 노디니 치즈, 롬바르디아 지역의 전통 당 절임 등 아름다운 이탈리아발 맛의 세계를 마음껏 누릴 기회다.
수많은 럭셔리 호텔이 포진하고 있는 도시지만, 이처럼 ‘품격 있는 집’을 연상시키는 세련되면서도 아늑한 인테리어와 정감 어린 서비스, 그리고 풍요로운 이탤리언 식도락의 정수를 품은 불가리 호텔 파리의 차별된 매력은 높은 인기의 이유를 증명한다. 명품 브랜드의 라이프스타일 사업 확장에서 단연 모범이 될 만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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