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윤리(Distanc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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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 2026

글 고성연

서울 한남동의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거리의 윤리(Distancing)〉는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데 익숙한 동시대의 시선을 잠시 멈추고 한두 걸음 떨어져 지긋이 살펴보자는 제안을 건넨다(기획 김해나). 한국(김주리, 임노식), 일본(케이 이마즈), 필리핀(마리아 타니구치)의 작가 4명이 참여한 단체전으로 신작 회화 19점, 조각 1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작품을 ‘읽기’보다 ‘통과’하며 느슨한 이동 속에서 작품과의 거리를 조절해 초점을 맞추도록 권유한다. 저마다 느끼는 ‘열린’ 의미의 거리감 속에서 거창한 의미 부여보다 감각이 다시 제 속도를 찾을 수 있는 ‘머무름’의 시간을 경험하기를 바라는 의도다. 전시장 초입에서 마주하는 평면 작품은 마리아 타니구치의 ‘벽돌 회화’ 시리즈인데, 언뜻 동일한 패턴의 나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바탕이 되는 선 하나하나를 연필로 그려 넣고 그 위에 채색을 했다고. 표면에 남은 불규칙과 요철은 시간성을 보여준다. 중앙에서 육중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김주리 작가의 ‘모습(某濕)’은 수분을 머금은 흙 덩어리가 주변과 감응하며 유지되는 조각 작업으로, 균열과 퇴적의 흔적을 평면에 응축한 회화 연작 ‘desert’와 나란히 자리한다. 젖음에서 응고로, 생성에서 퇴적으로 흘러가는 흙의 변화를 주축에 두고 ‘순환’을 상기시키는 병치다. 주변 환경에서 비롯된 사건과 감각을 출발점으로 삼는 임노식의 오일 파스텔화는 고운 색조와 경계를 흐리는 번짐 속에 화면의 형상이 서로 겹치고, 밀어내며 묘한 반전 같은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인도네시아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일본 작가 케이 이마즈의 작업은 신화와 민담의 도상, 역사적 이미지에서 건져 올린 파편이 한 화면에서 겹친다. 역사를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침전된 시간의 상태로 드러내는데, 서로 다른 시간과 서사가 충돌하기보다 ‘완충’의 거리에 놓여 공존한다. 오는 5월 2일까지.


김주리의 조각 ‘모습’이 가운데 놓인 전시 모습, 〈거리의 윤리(Distancing)〉
사진_전병철,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런던·파리·잘츠부르크·밀라노·서울 제공
마리아 타니구치, ‘무제’(2024),
작가·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제공 사진_닐 오시마
케이 이마즈, ‘She Who Treads’(2026)

마리아 타니구치, ‘무제’(2024),
작가·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제공 사진_닐 오시마

케이 이마즈, ‘She Who Treads’(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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