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sion of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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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05, 2025

에디터 성정민

데뷔 쇼를 마친 보테가 베네타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이스 트로터. 브랜드의 역사와 전통, 현대적 감각, 디자이너의 개인적 취향 사이에서의 외줄타기는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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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마지막 주, 2026 S/S 밀라노 패션 위크에서 드디어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고 기대했던 보테가 베네타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이스 트로터(Louise Trotter)의 첫 쇼가 공개되었다. 많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그렇듯 그녀 역시 브랜드의 유산과 본질부터 파악하려 한 듯 보였다. 그녀는 누구보다 더 완벽하고 영민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마치 오래전부터 보테가 베네타에 있었던 듯 여유로운 스타트로 우리를 감동시켰다.
작년 12월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음을 공식 발표한 후부터 베니스와 베네토 지역을 자주 방문해 이탈리아의 색감과 정서, 유산 등을 자신의 감각에 녹여냈다지만, 대략 6개월 만에 유서 깊은 대형 럭셔리 브랜드를 이토록 완벽하게 이해하고 흡수해 자신의 스타일로 해석해냈다는 사실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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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장 눈에 띈 의상은 모델이 워킹할 때마다 유려하게 흔들리며 조명에 반짝이는 프린지 디테일이었다. 가까이에서 보면 전통 수공예의 탄생지이자 유리공예로 명성 높은 베니스에서 착안해 적용한 다채로운 재활용 유리섬유 가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기에 밀라노의 모던한 건축에서 영감받은 구조적인 실루엣과 미니멀하면서도 풍성한 테일러링, 보테가 베네타가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던 시절, 뉴욕의 에너지를 닮은 사이즈의 과감한 변주까지. 이번 컬렉션을 보고 난 뒤에는 마치 보테가 베네타 역사책 한 권을 다 읽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그녀의 작품 곳곳에는 보테가 베네타가 탄생한 시점으로 되돌아가 치밀하게 브랜드를 답습한 흔적이 역력하다. 한편으론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보테가 베네타를 이끈 첫 여성 크리에이티브 리더 로라 브라지온(Laura Braggion)의 스타일을 오마주하기도 했다. 본인과 같은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대한 존경과 상징성을 담은 것이 아닐지.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기라도 하는 듯 여성의 아름다운 신체를 강조하는 디테일을 곳곳에 넣어 한층 여성스러워진 감각으로 새로운 보테가 베네타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반면 대비되는 파워 숄더와 오버사이즈로 현대 여성의 강인함과 당당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핵심이 되는 것은 보테가 베네타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관통하는 대표 가죽 위빙 기법인 인트레치아토(Intrecciato)의 ‘소프트 펑셔널리티(soft functionality)’를 이번 컬렉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쇼장은 물론 의상 곳곳에까지 녹여냈는데, 과거의 9mm와 12mm의 클래식한 위빙 비율을 되살리고, 대신 다양한 기법과 소재, 컬러를 믹스하면서 유연하고 다채롭게 변주해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것. 쇼장의 장식 역시 인트레치아토 탄생 50주년을 맞이해 위빙 기법으로 만든 이광호 작가의 거대한 가죽 구조물을 곳곳에 설치해 상징성을 공고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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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액세서리에서도 보테가 베네타의 역사를 엿볼 수 있었다. 1980년 개봉한 영화 <아메리칸 지골(American Gigolo)>에서 보테가 베네타의 가죽 클러치를 들고 등장해 브랜드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한 로렌 허튼(Lauren Hutton)에게 경의를 표하며 로렌(Lauren) 백을 새로운 비율로 재탄생시켰다. 가죽 위빙의 상징인 놋(knot)에는 한층 유연한 구조를 더했다. 까바(Cabat)는 컷아웃을 통해 클러치로 변형되었다. 특히 까바의 삼각형 구조는 인체 공학적 비율까지 고려한 듯하다. 가방을 드는 방식만으로 룩의 숄더라인에도 영향을 미치도록 설계된 것. 이러한 디자인의 변주와 기법의 확장은 스쿼시(Squash), 롱 프레임드 토트(Framed Tote), 크래프티 바스켓(Crafty Basket) 같은 새로운 스타일로 이어지며 장인 정신의 정수를 보여준다. 여기에 루이스가 재해석한 베네타 백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토마스 마이어 시절 하우스의 아이콘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베네타 백을 현대적으로 재탄생시킨 것. 부드럽고 둥근 형태의 호보 셰이프가 특징이며, 인트레치아토 위빙 기법을 사용해 가죽의 세련미를 부각한다. 특히 미니 사이즈의 베이비 베네타 백은 처음 공개되는 것. 모두 11월 한국에 출시되며, 베이비 베네타 백은 여름 컬렉션 때 만나볼 수 있다. 한편 2026년, 보테가 베네타는 브랜드 창립 60주년을 맞이한다. 이를 기념해 루이스 트로터는 영국 아티스트이자 아카데미상 수상 감독인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과 협업해 쇼의 사운드트랙 ‘66–’76을 완성했다. 니나 시몬(Nina Simone)과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가 각각 부른 ‘Wild is the Wind’를 재구성한 음악으로 두 목소리가 하나의 ‘듀엣(duet)’처럼 엮인다는 점에서 청각적 인트레치아토를 담아냈다. 보테가 베네타와 함께할 그녀의 다음 챕터가 더 기대된다. 문의 02-3438-7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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