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ent of 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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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 2021

에디터 성정민

오랜 시간 꾸준히 사랑받아온 샤넬 하우스의 상징과도 같은 N°5. 그 역사의 중심에는 시간과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N°5의 아이덴티티를 지키고자 한 조향사들의 힘이 있었다.
한 명의 조향사에서 다음 조향사로 이어지며 꾸준히 재해석되어온 N°5의 역사와 다섯 가지 향수로 완성된 샤넬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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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백 년 전인 1921년, 한 시대를 앞서가는 여성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은 또 하나의 도전을 시작한다. 바로 자신의 이름을 딴 향수를 

만드는 것.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그녀는 향수가 여성성이라는 제약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다. 그에 따라 샤넬의 첫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는 당시의 향
수에 사용하던 은방울, 바이올렛, 재스민 같은 한 가지 꽃향기에서 탈피하기 위해 힘썼다. 그래서 최고급 자연 유래 성분에 당시에는 생소했던 합성 분자
인 알데하이드를 조합해 아방가르드한 느낌의 N°5 향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다른 향수와는 차원이 다른 파격적인 향을 선보인 N°5의 출시와 동시에 현대
향수 시대의 막이 올랐다.


샤넬 N°5 탄생의 서막

1920년 가브리엘 샤넬이 파리지엔의 패션을 주도할 때, 샤넬은 러시아 황제의 사촌 드미트리 공작과 함께 친구인 화가 호세 마리아 세르와 그의 아내 미시아를 만나기 위해 몬테카를로로 향했다. 그들은 당시 그 지역의 예술 세계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어느 날 대화 중 향수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당시만 해도 향수 제작자가 아닌 패션 디자이너가 향수를 만든다는 것은 매우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는데, 샤넬은 이러한 새로운 도전에 관심을 보였다. 여기서부터 꽃의 땅이며 온기가 가득한 프랑스 남부 지방에 샤넬 N°5가 최초로 뿌리를 내렸다. 아이디어 단계부터 참여한 이 인물들은 미래 샤넬 향수가 지향하는 ‘향의 철학’을 정립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프랑스적인 가브리엘 샤넬의 클래식한 근엄함과 바로크 골드에 대한 애정, 그리고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와의 조우는 독보적인 향수 탄생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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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스타일의 향수, 향의 새로운 지표를 만들다

러시아 군주를 위해 향수를 만들던 샤넬의 첫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는 당시 프랑스 향수의 탄생지 그라스 근처의 라 보카에서 숍을 운영했다. 에르네스트 보는 플로럴 노트가 잘 퍼져나갈 수 있도록 당시에는 드물게 사용하던 휘발성 합성 물질인 알데하이드에 대해 연구해오고 있었다. 가브리엘 샤넬은 그에게 샤넬 향수 제작에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전에 없던 유일무이한 향수를 만들어내는 것. 게다가 좋은 향기가 나는 것은 물론 복합적인 향기에 관능적인 향기를 내포하고 있으며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만인이 공감할 만한 향을 지닌 향수를 원한다고 말했다. 에르네스트 보는 놀랍도록 풍부한 꽃향기로 향기 구조를 만들어냈으며 최소 80여 가지 원료를 사용하고, 여기에 알데하이드를 기존 첨가량과는 달리 좀 더 많은 양을 사용해 향기를 한층 강화했다. 1921년 그는 가브리엘 샤넬에게 몇 가지 샘플을 보여주었고, 이 중 다섯 번째 샘플이 샤넬 N°5의 첫 번째 향수인 빠르펭이 되었다. N°5는 완전히 새로운 향수의 시대를 열었다. 전문가들이 향수를 논할 때 N°5 이전과 N°5 이후에 나온 향수로 구분해 언급할 정도다. N°5는 천연 원료와 합성물이 조화를 이루며 혼합되는 새로운 향수의 시대를 연 것이다. 그리고 샤넬 N°5 향수의 탄생은 향후 모든 향수에 영향을 끼칠 향의 스타일을 새롭게 정의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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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5의 재해석

향에 대한 에르네스트 보의 뛰어난 감각과 독특한 터치로 첫 샤넬 N°5 향수인 빠르펭이 탄생한 후, 그의 뒤를 이은 3명의 조향사는 여전히 샤넬 하우스를 상징하는 N°5의 고유성과 품격을 유지하면서도 변화를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샤넬 N°5만의 비밀스러운 포뮬러는 마치 성화처럼 앙리 로베르와 자끄 뽈쥬, 그리고 현재 올리비에 뽈쥬에게 전해졌다. 지금도 그의 시간은 N°5를 구성하는 성분인 재스민과 메이 로즈의 수확 일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수확부터 추출법에 이르기까지 올리비에 뽈쥬는 샤넬 향수 크리에이션 및 개발 연구소와 함께 N°5 향수 제작의 모든 과정과 단계에 참여하는 등 모든 샤넬 향수 크리에이션을 관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N°5의 품질과 품격은 지금까지 처음 상태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 샤넬 N°5는 출시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샤넬의 모든 향수에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어왔다. 하우스 향수를 계승한 모든 조향사는 다양한 재해석과 스타일의 변화를 통해 N°5의 수많은 매력을 하나씩 발굴했다. 이로써 현재 N°5는 오리지널 빠르펭을 포함한 다섯 가지 버전으로 출시되고 있다. 1921년 샤넬에서 가장 먼저 출시한 향수 N°5 빠르펭은 강렬한 플로럴 부케 향으로 그 시대에 유행하던 단일 향으로 구성된 향수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탄생한 새로운 제품이었다. 샤넬의 첫 향수로 샤넬 하우스의 스타일을 정의하고 꽃 원료부터 보틀에 이르기까지 N°5의 전통과 전문성의 기준을 정립했다. 빠르펭이 출시된 지 3년 후, 에르네스트 보가 기존 N°5를 재해석한 향수 N°5 오 드 뚜왈렛을 출시한다. 오리지널 향수보다 더 우디한 향으로 N°5만의 고유한 특징인 알데하이드와 만나 플로럴 부케 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1986년 자끄 뽈쥬가 재해석한 N°5 오 드 빠르펭에 바닐라 노트가 가미되었고, 2008년 오리지널 향수의 시그너처 향을 재해석한 N°5 오 프리미에르는 향수 세계에 도래한 내추럴 트렌드에 맞춰 공기처럼 가볍고 화사하게 재해석해냈다. 마지막 2016년 올리비에 뽈쥬가 탄생시킨 새로운 버전의 N°5 로(L’EAU)는 시더우드를 기반으로 향을 조합해 그 어떤 N°5 버전의 향수보다 더 부드러운 느낌의 잔향과 투명한 느낌을 살린 향으로 다른 버전들과 가장 다른 모습이지만 N°5만의 느낌을 벗어나지 않는 트렌디하고 전통적인 향을 보여준다. 올리비에 뽈쥬는 샤넬에서 이미 15가지 향수를 제작했다. 그는 다양한 라인과 레 젝스클루시프 드 샤넬 및 레 조 드 샤넬 컬렉션 등 다양한 샤넬의 스타일을 상징하는 의미 있는 향수로 N°5를 재탄생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최근 선보인 N°5 로(L’EAU)는 N°5의 가장 최신 버전이다.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순수함과 지속성을 담아 하우스의 아이코닉한 향수인 N°5를 산뜻하면서도 현대적으로 해석해 제작한 향수다.


N°5 재해석의 역사


(왼쪽부터)

N°5 빠르펭 (1921년) / N°5 오 드 뚜왈렛 (1924년) / N°5 오 드 빠르펭 (1986년) / N°5 오 프리미에르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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