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kyo is ca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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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7, 2023

글 고성연

지난해만 해도 팬데믹의 빗장이 풀리기는 했지만 활짝 열려 있다는 느낌이 지배적이지는 않았던 일본 도쿄의 도시 풍경.
이제는 예전의 생동감을 완연히 되찾은 모습으로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인파를 맞이하고 있는데, 특히 최근 유난히 세간의 이목을 끈 화제의 전시들이 있다. 이미 현지에서 막을 내리기는 했지만 융합의 시대에 다채롭게 빛을 발하는 전시 콘텐츠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 도쿄의 창조적 장을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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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therwick Studio: Building Soulfulness>_모리 미술관

도쿄의 대표적인 명소 롯폰기 힐스는 미술 애호가들에게는 ‘밤의 미술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모리 타워의 최상단부에 자리해 눈부신 야경과 더불어 빼어난 기획력이 돋보이는 전시 콘텐츠를 자랑하는 모리 미술관(Mori Art Museum)이 연중 내내 거의 휴일도 없이 늦은 밤까지 문을 여는 덕분이다(화요일을 제외하고 밤 10시에 닫는다). 롯폰기 힐스에 도착한 밤의 산책자라면 우선 광장 한가운데 특유의 존재감을 발휘하는 커다란 청동 조각(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을 마주치게 된다. 이윽고 모리 타워에 올라가면 첨예한 현대미술 이슈를 다루기도 하고 문화 예술계라는 큰 틀에서 콘텐츠의 변주를 꾀하는 다채로운 전시를 접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는 세계적인 건축 스튜디오인 헤더윅 스튜디오의 주요 프로젝트 28개를 선보인 전시 를 감상할 수 있는 기간이었는데, 52층에 있는 ‘도쿄 시티뷰’ 공간에서 전시가 펼쳐져 도쿄 시내를 가득 수놓은 찬란한 불빛 퍼 레이드를 배경으로 인상적인 건축과 디자인 모형이 가득한 대규모 구성을 일본 최초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헤더윅 스튜디오는 영국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이 이끄는 건축 스튜디오로 ‘예술섬’으로의 변화를 꾀하려는 서울 노들섬의 디자인 기획 공모에 초청된 7개 팀 중 하나이기도 하다. 헤더윅은 15년 전쯤 필자가 런던에 체류하던 시절 심층 인터뷰를 한 인연도 있기에 그동안 글로벌 스타로 거듭난 그의 창조적 여정을 훑어보는 감회가 남달랐다. 하이브리드 버스,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 앉으면 의자가 고정되지 않고 팽이처럼 360도 회전하는 마지스(브랜드명)의 ‘스펀(Spun)’ 체어처럼 런던과 상하이에서 직접 본 건축물과 디자인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꾸린 흥미로운 프로젝트들. 영국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과 왕립예술학교에서 3차원 디자인과 가구 디자인 등을 공부한 디자이너 출신의 헤더윅이 오늘날 이렇듯 경계를 가리지 않는 크리에이터로 각광받게 된 데는 “디자인 전공자면서 왜 감히 건축의 영역에 덤비느냐. 그건 건축이 아니다”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도전적으로 개척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주장하듯 ‘혼이 담긴 느낌(soulfulness)’을 품은 건축의 미학을 지구촌 도시 풍경에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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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 Dior: Designer of Dreams>_MOT

도쿄도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MOT)과 처음 대면한 것은 지난해 가을이었다. 당시 늦가을 저녁 행사였던지라 ‘실물’의 진가와 미술관 옆 공원까지, 그 평온하고 수려한 풍경을 제대로 볼 틈이 없었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온라인 예매는 일찌감치 마감된 탓에 아침이면 ‘현장표’를 사느라 똬리를 겹겹이 틀고 기다리는 인파로 뉴스를 장식하는 ‘디올 전시’를 취재하러 간 덕분에 고맙게도 햇살 가득한 봄날의 아름다운 미술관 정취까지 만끽하게 된 셈이었다. 수십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간 것으로 추정되는 인기 만발한 전시 <Christian Dior: Designer of Dreams)>는 파리, 런던, 뉴욕을 거쳐 지난해 겨울 도쿄에 상륙한 순회전이다. 크리스챤 디올은 패션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갤러리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한 만큼 예술에 대한 애정이나 안목이 남다른 인물이었다. 그래서 50대 초반에 유명을 달리한 짧은 생애였지만 오트 쿠튀르의 세계를 평정했던 그의 컬렉션을 이루는 정체성의 근간도 ‘예술’이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다. 이번 MOT에서의 디올 전시가 그의 완성도 높은 예술적 감각을 여실히 드러내는 수준의 브랜드 아카이브 전시였다면 이토록 강한 호응과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큐레이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순회전’을 일본이라는 배경에 맞게 창조적으로 버무려내는 방식과 구성, 그리고 공간과 콘텐츠, 자본을 십분 활용한 ‘전시 예술’의 미학을 두루 섭렵했기에. 물론 여기에는 디올 브랜드와 오랜 세월에 걸쳐 인연을 맺어온 일본의 패션 역사가 깔려 있기도 하지만 전시의 미장센과 얽힌 모든 이들이 출중한 실력을 발휘했다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종이 예술의 절정을 보여주는 듯한 방부터 사진 예술이나 미디어 아트, 원화 등을 배경에 녹여낸 방 등이 이어지면서 각 전시실이 저마다 다채로운 연출을 뽐내는데, 온몸의 감각이 쉴 틈 없이 최대치로 반응하게 된다. 디올과 함께해온 아티스틱 디렉터들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세션의 공간적 배경에 예술성을 더해준 일본 사진작가 다카기 유리코(Yuriko Takagi)의 솜씨도 눈여겨볼 만하다(그녀의 작품을 따로 모아놓은 전시실도 마련돼 있다). 패션 전시가 현대미술을 다루는 공간에서 어떻게 예술적인 전시 콘텐츠로 거듭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협업 사례이기도 하지만 그저 해외 기관에서 대여한 작품들을 뼛속 깊은 고민과 성의 있는 투자 없이 나열하는 듯한 모습이 종종 안타까운 요즘 우리나라 미술계에 반성의 계기를 일깨워주는 지점이 많은 사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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