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에서 감각적 잔향으로 – BBL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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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4, 2026

글 고성연

베자르 발레 로잔(Béjart Ballet Lausanne) with 김기민

우리가 흔히 ‘안무’라고 번역하는 ‘choreography’라는 단어를 놓고, 동시대의 무용 철학에 대한 책을 집필한 윤우인 저자는 춤을 계획하고 만드는 행위로 국한하기에 그냥 ‘코레오그래피’로 쓰기를 권유한다. 고대 그리스어로 ‘코레이아(춤, choreia)’+‘그래피(쓰기, graphy)’가 결합된 이 단어는 애초부터 ‘춤을 쓴다’는 사유를 지녀서다. 움직임을 하나의 언어 구조, 감각적 배열, 혹은 인식의 기술로 간주하는 태도에서 출발하는, 고정된 개념의 ‘명사’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을 반복하는 유동적인 개념의 ‘동사’에 가깝다는 해석이다. 지난 4월 말 내한한 베자르 발레 로잔의 공연은 이 개념이 지닌 사유의 깊이와 동시대적 확장성을 곱씹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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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사유하는 동시에 몸을 넘어서며, 움직임을 구성하고 번역하는 모든 과정,
그것이 오늘날 다시 코레오그래피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_윤우인


동시대 발레를 대표하는 댄스 컴퍼니 중 하나인 베자르 발레 로잔(Béjart Ballet Lausanne, 이하 BBL)이 2001년 이후 25년 만에 다시 찾은 서울 무대. 지난 4월 말 GS아트센터에서 나흘간 열린 이 공연은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 최초의 동양인 수석 무용수이자 한국이 낳은 발레계 슈퍼스타 김기민과의 협연으로 단연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거슬러 올라가보면 1987년 BBL을 창단한 모리스 베자르(Maurice Béjart, 1927~2007) 역시 20세기 중·후반 무용계에서 ‘슈퍼스타급’ 존재였다. 그는 단순히 유명한 수준이 아니라, 뒤이어 각광받은 피나 바우슈처럼 현대무용의 판 자체를 바꿔놓은 인물이다. 전쟁 이후 유럽 문화가 재편되면서 발레가 더 이상 ‘궁정 예술’이 아니라 공연 예술 시장 속 경쟁 장르가 되어 고전 중심의 질서가 해체되는 전환기를 맞이한다. 현대무용과 안무가 중심 시스템이 자리 잡은 전환기에 베자르는 전통 발레의 문법에서 벗어나 음악·철학·종교적 상징·집단 에너지를 결합한 대규모 무대를 연출해낸 혁신가였고, 자신의 코레오그래피 스타일을 대중적으로도 크게 각인시켰다. 특히 라벨의 단순하지만 강렬한 선율을 몸짓으로 극대화한 ‘볼레로(Boléro)’는 베자르의 상징 같은 작품으로, 그의 뮤즈이자 삶의 동반자이기도 했던 호르헤 돈(Jorge Donn, 1947~1992)이 주역으로 원형 테이블 위에서 춘 남성 솔로 버전은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전설적인 자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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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베자르는 2007년 작고했지만 그 유산은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 그의 제자 줄리앙 파브로가 예술감독으로 BBL을 이끌면서 베자르 레퍼토리와 동시대 창작 사이의 균형을 새롭게 조율해나가고 있다. 지난 서울 공연은 “볼레로는 제 꿈”이었다 말하는 김기민을 비롯해 많은 무용수들이 탐내왔던 작품 ‘볼레로’뿐만 아니라 이 기회에 기나긴 창조적 여정을 이어온 BBL의 여러 시도를 반영한 스펙트럼을 접할 수 있는 계기였다. 스트라빈스키의 강렬한 음악을 바탕으로 한 ‘불새(The Firebird)’, ‘라 루나(La Luna)’,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햄릿’, 그리고 조니 캐시의 음악을 통해 존재의 여운을 시적으로 담아낸 아시아 초연작 ‘바이 바이 베이비 블랙버드(Bye Bye Baby Blackbird)’가 무대에 올랐다. 각 작품은 베자르 안무 세계의 서로 다른 시기와 감각을 대표하는 레퍼토리로 구성되어 BBL이라는 단체의 폭넓은 미학적 스펙트럼을 드러냈다. 필자는 국·내외 출장의 틈바구니 속에서 김기민의 ‘볼레로’ 리허설과 프로그램 B 공연을 관람했다. 모든 공연을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이번 무대는 BBL의 예술 세계가 시기에 따라 어떻게 다른 몸과 사유의 감각으로 분화되어왔는지가 하나의 작은 스펙트럼으로 다가왔다.


‘움직임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베자르와 BBL의 작업은 이 질문이 시대별로 다른 밀도로 나타나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초기 작품에서 그의 작품은 집단적 이상과 상징을 향해 상승하는 힘이 압도적이다. 예컨대 ‘불새’(1970)에서 드러나는 군무의 구조는 신화적 에너지의 매개로 작동하며, 무대 전체가 하나의 의식과도 같다. 그러나 이 거대한 상승의 서사는 화려하지만 어쩐지 ‘20세기의 것’이라는 역사성이 묻어난다. 이에 비해 베자르의 ‘볼레로’(1961)는 여전히 에너지의 흐름이 중요하지만 또 다른 핵심을 드러낸다. 상징이나 서사가 아니라 반복과 축적이 키워드다. 중심이 되는 신체를 향한 군무가 점차 밀도를 높여가면서, 무대는 이야기보다 물리적 긴장과 리듬의 구조로 달아오른다. 특히 ‘인물’이라기보다 ‘중력’에 가까운 ‘솔리스트’의 존재 방식에 따라 전체 작품의 에너지 방향이 달라진다. 유니섹스 작품으로 구성한 만큼 남녀 솔리스트와 군무를 추는 남성 무용수들이 주고받는 에너지의 느낌도 사뭇 다르다. 정지 동작에서도 존재감이 남다른 김기민의 절도 있고도 폭발적인 춤과 큰 키에서 나오는 동작의 우아한 예술성이 돋보이는 카테리나 체비키나의 중성적 매력을 보면 다른 무용수의 버전이 절로 궁금해진다. ‘불새’보다 더 오래된 작품인데도, 동시대성이 느껴지고 ‘역시 베자르인가’ 싶을 정도로 구조적 매력과 몰입감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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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베자르의 작품이지만 여성 솔로 레퍼토리인 ‘라 루나’(1976)에서는 결이 다르게 펼쳐진다. 바흐의 바이올린 선율이 애잔하게 깔리는 이 작품은 군무의 응집력보다 ‘달’을 중심으로 한 장면 사이의 감각적 흐름이 신비롭고 몽환적으로 펼쳐진다. 베자르 특유의 강한 에너지는 있지만, 몸이 더 이상 중심으로 수렴하지 않고, 부유하는 감각의 매개로 존재하는 듯하다. 그리고 신체의 리듬과 구성의 밀도는 여전히 촘촘하지만,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후기 베자르의 기조를 잘 드러내는 작품이 아시아 초연인 ‘바이 바이 베이비 블랙버드’다. 별다른 중심 서사 없이, 매일 아침 찾아오던 작은 새가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미지에서 출발했다는 이 작품은 네덜란드 출신인 요스트 브라우엔라에츠가 코레오그래피를 맡았다. 구조적 긴장미가 세련되게 배어 있는 이 작품은 사라져가는 것들과 존재의 나약함을 일깨운다. 조니 캐시의 처연한 미를 품은 음악은 감각의 잔향을 짙게 남긴다. 줄거리 대신 이미지를 남긴다는 맥락에서 살짝 서늘한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연상케도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여운이 남고, 동시대적으로 읽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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