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속 ‘인간다움’에 대해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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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1, 2026

글 양혜연(객원 에디터)

동시대의 질문에 답하는 세 전시


생성형 AI 대화창에 프롬프트 한두 줄만 입력하면 지브리 애니메이션풍 이미지부터 사진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사실적인 이미지까지 완성된다. 생성까지는 단 몇 초면 충분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스스로 학습하며 진화를 거듭하는 AI의 생산성은 경이롭다. 그러나 그 ‘눈부신 변화’는 동시에 한 가지 질문을 남긴다. ‘AI가 창조와 사고의 영역까지 넘보는 시대, 인간의 고유한 가치는 무엇인가?’ 피할 수 없는 기술 혁명의 흐름 속에서 인간다움의 의미를 탐색하며, 그 돌파구를 모색하는 전시가 서울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 가운데 세 전시를 중심으로, 기술과 인간다움의 경계를 따라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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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SNS에서 한 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MBC 프로그램 <손석희의 질문들4>의 미방분으로 공개된 소설가 김애란과 언론인 손석희의 대화 장면이었다. AI 사용 경험에 대한 이야기 중 ‘AI와 인간의 차이점’을 묻는 손석희의 질문에 김애란은 “인간한테 있고 AI에는 없는 한 가지는 바로 망설임”이라 답했다. 빠르고 유려한 AI의 조언보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인간의 투박한 침묵이 때로는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그녀의 말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발전한 기술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인간이기에 지닌 불완전함이라는 역설을 일깨운다.
알고리즘 너머의 시선


인간의 불완전함이 AI 시대에 어떤 가능성을 지니는지 살피기 위해서는, 먼저 오늘날 인간과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진행 중인 그룹전 <알렉사에게>(2026. 3. 26~7. 26)는 신문과 라디오가 정보 탐색의 중심 기술이었던 과거부터 생성형 AI와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변화해온 정보 탐색 과정을 되짚는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정보 탐색이 자동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어떻게 능동적으로 정보를 수용하고 현실을 바라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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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이메일 인터페이스에서 착안한 ‘보낸 편지함’과 ‘받은 편지함’, 크게 두 섹션으로 나뉜다. 보낸 편지함은 성능경, 전소정, 강동주, 남화연, 노송희, 구동희의 작품을 바탕으로 기술을 매개로 얻은 정보와 현실 사이의 낙차를 주로 조망한다.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전소정의 ‘유령들’(2017)과 노송희의 ‘드리프트 드래프트’(2026)가 있다. ‘유령들’은 작품을 진행하던 당시 유럽에 체류 중이던 작가와 부산에 거주 중이던 동료 작가 시리엘이 소통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담은 작업이다. 이들은 이미지는 이메일로, 텍스트는 우편으로만 보낸다는 독특한 원칙을 세우고 서로의 소식을 전했다. 어떠한 설명 없이 보낸 이미지에는 의미가 결여되고, 뒤늦게 도착한 텍스트는 시의성을 상실하며 공백을 만든다. 이처럼 엇갈린 정보의 흐름은 정보를 매개하는 방식이 우리의 현실 인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드러내며, 현실과 정보 사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간극을 보여준다. 노송희 ‘드리프트 드래프트’는 작가가 독일 여행에서 우연히 구한 꽃 사진 엽서를 평판 스캐너로 스캔한 뒤, 이를 다시 인쇄하는 행위를 수없이 반복하는 과정을 담았다. 재현과 복제가 반복되는 동안 점점 사라지는 원본 이미지는 실재와 재현 사이의 거리를 드러낸다.

한편 받은 편지함은 한 시대의 편린을 수집하고 인덱스 형식으로 재구성한 강동주, 백정기, 성능경, 전소정의 작업을 소개한다. 그중 1978년부터 1981년까지 기사에서 수집한 30컷의 사진에 임의의 점선을 추가한 후, 이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궤적으로 연결한 성능경의 ‘현장 6’(1981)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단절된 사건들을 하나의 지도처럼 엮어낸 이 작업은 무관해 보이는 사건이 모여 한 시대의 풍경을 이룬다는 사실을 은유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AI 시대에 정보 너머의 연결을 ‘발견’하는 시선은 인간의 몫임을 환기한다.


사물의 시간까지 기록하다


19세기, 사진 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사진은 현실을 기록하는 도구로 여겨졌지만, 수많은 사진가의 실험과 노력 끝에 독자적인 미학을 구축하며 예술 장르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적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도 사진만큼이나 실제적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AI 기술이 등장하며 오늘날 사진은 존재의 당위성을 증명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국제갤러리 서울의 <진동하는 사물들>(2026. 6. 9~7. 19)은 사진이 AI 이미지와 구별되는 감각적 조건을 묻는 전시다. 전시를 기획한 구본창을 비롯한 국내 대표 사진가 9인의 그룹전으로, 과도한 디지털 후보정이나 AI 기술 없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사물을 해석해 프레임에 담은 전시 작품은 사진만이 지닐 수 있는 감각을 되짚는다. 사물 각각의 고유한 이야기를 드러내는 구본창, 우연한 순간과 이를 필연적 이미지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 사이에서의 망설임을 담는 정희승 등 각 작가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시선을 드러낸다. 그중에서도 특히 구성연과 조선희는 보다 직접적인 화법으로 AI 기술과 대치하는 작품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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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구성연의 ‘설탕’ 연작은 직접 설탕을 녹여 보물처럼 반짝이는 오브제를 만들고 촬영해 실제와 가상, 영원과 순간, 이상과 허상의 경계에서 인간의 욕망을 조명한다. 작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오브제를 정성 들여 만들고, 촬영 후 서서히 녹아 소멸하기까지의 과정 등 작품이 프레임에 담기는 찰나의 전후로 이어지는 긴 시간을 의식하게 된다. 이는 실제적인 과정을 생략하고 오직 이미지만 남기는 AI 작업에는 존재하지 않는 여백이다. 조선희의 ‘Planet’(2024~2025) 연작도 마찬가지다. 부패하며 형태를 잃어가는 과일을 작은 행성처럼 포착한 작업은 인간의 의도가 개입할 수 없는 시간이 만든 흔적과 생명의 유한함까지 작품의 일부로 끌어안는다. 이로써 완성된 이미지만 제시하는 AI와 구별되는 사진만의 고유한 감각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과정 속 이야기


이제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결국 인간의 불완전함은 어떻게 기술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남산의 문화 예술 공간 피크닉에서 진행 중인 헬싱키 기반 디자인 스튜디오 콤파니의 전시 〈COMPANY World Affair〉 (2026. 4. 3~9. 6)는 이 질문에 답이 되어줄 실마리를 제시한다. 이들은 AI 기술보다 더 근원으로 돌아가, 효율과 대량생산 중심의 산업디자인계에 반기를 들고, 창작 과정 중 발생한 우연과 불완전한 협업의 흔적까지 창작의 일부로 끌어안는다. 한국인 아무 송과 핀란드인 요한 올린으로 구성된 디자이너 듀오 콤파니는 20여 년간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현지 장인들과 협업하는 ‘시크릿 프로젝트(Secret Project)’를 진행해왔다. 프로젝트는 핀란드, 한국, 러시아, 멕시코, 일본, 페루, 파키스탄, 미국, 인도 등 다양한 나라를 오가며 고유의 재료와 기술을 몸소 체험하고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후 두 작가는 직접 그린 드로잉을 매개로 현지 장인과 소통하며 장인의 작품 세계에 자신들의 상상력을 조심스레 덧입힌다. 전시에서는 파키스탄의 종교적 규율에 대한 존중을 담은 목조각 시리즈, 일본 전통 목각 인형 ‘고케시’에서 영감받은 조각 작품 등 전 세계를 횡단하며 이뤄진 시크릿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소개한다. 이 중에는 영천에서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젊은 장인과 협업해 목탁을 재해석한 작품, 15년 전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계기로 인연을 맺은 대나무 장인과 재회해 만든 대나무 모자 등도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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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작품은 저마다의 특색과 전통, 매력을 지녔는데, 개인적으로는 영천목탁과의 협업 작업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간판의 상호를 영‘짠’목탁이라고 잘못 적은 요한의 드로잉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이 실수는 멀고도 낯선 한국의 영천이란 지역에 와서 종이와 펜, 그리고 서툰 한국어 실력에 의지하며 문화를 배워나가고, 마치 그림을 그리듯 한국어를 옮겨 적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게 만드는 이런 불완전함이야말로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다움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우리는 전체가 과정으로 이루어진 삶을 살아가는 존재 아니던가. 과정에서만 허락되는 망설임과 실수, 그리고 긴 시간을 견디는 일은 분명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온 것은 언제나 완벽한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서 생겨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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