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의 미학을 삶으로 실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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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 2016

글 윤여진(양주시립 장욱진 미술관 학예 연구사)

화가 장욱진이 오는 2017년에 탄생 1백 주년을 맞이한다. 이를 기념해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과 가나아트센터 등에서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동시대 예술가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그가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차지하는 독보적인 위상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을 성찰하며 자신에게 진실되고 솔직하고자 했던 장욱진의 ‘자기 고백’에 다시 한 번 귀 기울이고, 고요히 마주하며 그의 작품과 대화를 나눠볼 기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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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를 걸쳐온 장욱진(1917~1990) 작가의 창작 생활과 이후 한국 화단에 미친 영향,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를 종합해보자. 그는 주로 “동서양의 이분법적 구분을 탈피한 화가”(정영목), “이중섭과 함께 독자의 길을 걷는 소박파”(이경성),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고독한 화가”(조은정) 등 한국의 전통성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로 해석된다.
그가 살아온 1917년부터 1990년까지 73년의 세월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와 유신 체제, 민주화 운동 등 격변과 질곡의 시대적 혼란기였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그러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에서 벗어나 초현실적이고 자신이 꿈꿨던 이상적인 세계를 함축적으로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아이와 같이 동심 어린, 순수한 울림을 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당시 사회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한 일방적인 회피로 볼 건 아니다. 장욱진은 그가 처한 시대상 속에서 누구보다도 철저히 자신의 정체성과 작가로서의 끊임없는 고민을 거친 그만의 ‘작가 의식’을 통해 특유의 작품 세계를 구현해냈다.

‘완전고독’ 속의 자기 자신을 발견하다
“표현(表現)은 정신생활, 정신의 발현(發現)이다. 표현이 쉽고도 어려운 것은 자기(自己)를 내어놓는 고백(告白)이 되기 때문이다.” (장욱진, 동아일보, 1969년 4월 10일) 스스로의 발언처럼 그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은 개인의 내재적인 성찰뿐만 아니라, 나아가 본격적으로 서양 사조가 유입된 전후(戰後) 한국 현대미술의 주체성을 찾고자 했던 작가로서의 실험과 모색으로 이어졌다.
그의 작품에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실제로 작가가 느끼고 접했던 까치, 나무, 강아지, 가족, 아이 등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전체적인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이 주제 의식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장욱진’만의 독자적인 양식으로 구축됐다. 이는 곧 그가 한평생에 걸쳐 고민했던 정체성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인 것이다. 장욱진의 대표작 ‘자화상’(1951)은 한국전쟁 당시 고향 충남 연기군 내판에 피란 가 있던 시기에 제작한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작가로서의 고민이 잘 느껴지는 작품 중 하나다. 영국 신사풍 양복을 입고 모자, 우산을 들고 있는 ‘모더니스트’ 장욱진이 황금색 보리밭 한가운데에 당당하게 서 있다. 그의 뒤로는 강아지가 있고, 하늘에는 네 마리 새가 날고 있다. 이러한 그의 모습에서는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적 혼란기를 극복하고 예술가로서 시작하는 자신을 당당히 알리고자 하는 작가로서의 다짐이 엿보인다.
실제로 장욱진은 당시 제작 배경을 “이 그림은 대자연의 완전고독(完全孤獨) 속에 있는 자기를 발견한 그때의 내 모습이다. 하늘엔 오색 구름이 찬양하고 좌우로는 풍성한 황금의 물결이 일고 있다. 자연 속에 나 홀로 걸어오고 있지만 공중에선 새들이 나를 따르고 길에는 강아지가 나를 따른다. 완전고독은 외롭지 않다.” (<畵廊>, 1979년 여름호)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외롭지 않은 완전고독’은 그의 삶을 대변해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장욱진은 단 두 번의 사회생활, 즉 2년간의 국립중앙박물관 재직 경험과 6년간의 서울대 미대 교수 시절을 제외한 모든 생애를 경기도 덕소, 수안보, 마북리 등 한적한 시골에 마련한 화실에서 ‘완전고독’을 즐기며 치열하게 창작 활동에만 전념했다. 이런 행적은 유유자적한 ‘자유인’, ‘도인’ 혹은 ‘기인(奇人)’이라는 단어로 흔히 그를 신화화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결한 삶과 정신이 반영된 작품 세계
이처럼 모든 허례허식을 걷어낸 장욱진의 ‘심플’한 삶과 정신은 그의 작품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그는 단순하게, 순수하고 본질적인 요소만을 작은 화면에 응축하고 함축한다. ‘집과 아이’(1959)는 그런 작품의 대표적인 예로 원, 삼각형 등의 도형과 몇 개의 선만으로 집의 구조를 그려내고, 천진난만한 아이를 표현하고 있다. 화가가 가족과 따로 떨어져 덕소 화실에서 지내던 시절에 그린 작품 ‘가족도’(1972)는 단순하고 평면적인 집과 가족, 새, 그리고 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한없이 따뜻하고 소박한 정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집 안에 온 가족 구성원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집과 아이, 가족은 작가에게 창작 활동의 중요한 원동력이자 모티브로 ‘작가’와 ‘가장’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가족에 대한 자신의 애틋한 마음, 그리고 어린이와 같은 그의 감수성을 잘 보여준다. 장욱진이 세상을 떠나던 해에 제작한 작품 ‘밤과 노인’(1990)에서는 수염을 단 도인이 그와 평생을 함께한 집과 아이, 그리고 나무를 뒤로한 채 하늘을 날고 있다. ‘자화상’(1951) 속 위풍당당한 모더니스트 장욱진은 이제 세속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초탈(超脫)한 도인이 된 것이다. 뒷짐을 지고 하늘을 나는 도인의 여유로운 모습과 ‘자화상’ 청년의 꼿꼿하고 당당한 모습에서 철저히 고독한 삶을 살며 “나는 심플하다”라고 외쳤던 장욱진의 뚜렷한 작가 의식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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