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IT 거물들의 성공적인 결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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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 2012

글 김정남(IT 전문 멀티 라이터, <기획의 신, 스티브 잡스> 저자, http://www.multiwriter.co.kr)

IT 갑부라고 하면 첨단 산업 특유의 이미지 때문에 일에서 엄청난 성공을 한 반면, 가정에는 소홀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게 된다. 거기에 갑부라는 단어까지 합쳐지면 젊고 예쁜 여자들만 찾을 것만 같은 선입견이 더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IT 갑부들은 극히 일부의 경우만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정생활에 매우 충실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일뿐만 아니라 삶을 조화롭게 이끌었다. 훌륭한 배우자인 로렌 파월은 독선적인 스티브 잡스를 가정으로 이끌었고, 빌 게이츠는 부인의 설득에 따라 자선사업가로서의 행보를 펼쳤다. IT 갑부들의 삶을 안정으로 이끈 숨은 조력자, 행복한 가정 이야기.


IT 갑부들의 공통점, 행복한 가정

실제 IT 업계는 그 어느 분야보다도 경쟁이 심하고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에 가정에 충실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업종이다. 그리고 거대 기업의 CEO처럼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한 남성이 조강지처를 버리고 젊은 여자와 재혼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지칭하는 ‘트로피 아내’라는 단어가 생겨날 정도니 IT 갑부라고 하면 가정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듯 보인다. 하지만 의외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앤디 그로브처럼 세계에서 손꼽히는 IT 갑부들은 성공적인 사회생활은 물론 행복한 가정생활을 유지하며 일과 생활의 균형을 잃지 않았다. 필자는 IT 갑부들의 특색을 연구하면서 여러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행복한 가정생활이다. IT 갑부들은 인생의 행복 자체가 일과 삶의 균형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가정을 위해 헌신한다. 인텔의 창업 공신으로 CEO와 회장 자리에 오른 앤디 그로브는 혈혈단신으로 헝가리에서 망명해 온 피난민 출신이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던 그는 리조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오스트리아에서 이민 온 에바 캐스턴을 만나 1958년에 결혼했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남다른 앤디 그로브는 항상 곁에서 지지해주고 도움을 주는 에바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부인과 떨어지기 싫어 출장 가기를 꺼렸고, 저녁 식사는 가급적이면 집에서 하려고 노력했다. 또 결혼한 지 40년이 넘어도 부인과 함께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들 부부의 최대 위기는 1990년대 중반 앤디 그로브가 전립선 암에 걸렸을 때이다. 이때 부인은 스탠퍼드대학교의 도서관을 매주 방문해 최신 연구 자료를 찾아서 복사를 할 정도로 극진히 간호했다. 덕분에 앤디 그로브는 곧 완치되었고, 회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가족에 대한 헌신에서 기쁨을 얻는 마이클 델

델 컴퓨터의 창업자 마이클 델 역시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며, 특히 가족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젊은 시절 마이클 델은 모든 시간을 일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일정 시간 이상 일을 하면 능률이 극도로 떨어지며 행복한 감정도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주변에는 가족도 없이 일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마이클 델은 그들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결심한 그는 1989년 봄, 친구의 소개로 수전을 만났는데, 그녀는 부동산 중개업자로 일하던 커리어 우먼이었다. 1989년 10월 28일 결혼한 이후 4명의 자녀를 둔 마이클 델은 매우 규칙적인 사람이 되었다. 오전 5시 45분에 일어나서 헬스나 수영을 하고, 7시 15분이 되면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한다. 그리고 오후 6시 30분이면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애들을 재우기 위해서 침대를 정리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상한 아버지인 그는 아이들이 잠들면 그제야 이메일을 읽고 10시 30분에 잠이 든다고 한다. 가족을 모든 생활의 중심에 두는 그는 주말이면 철인 3종 경기를 즐기는 아내와 함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도 한다.

성공으로 이끈 헌신적인 내조, 손정의

사실 매번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는 앤디 그로브와 마이클 델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다. 대부분의 CEO들은 매우 바쁘다. 손정의는 일 때문에 결혼식에 두 번이나 늦은 워커홀릭이었다.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한 손정의는 영어를 공부하는 학원에서 두 살 연상의 일본 여성 우미 마사미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손정의는 우미 마사미가 자신의 아내가 될 것임을 직감하고 적극적으로 구애를 했다. 처음 우미 마사미는 손정의를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정의의 계속되는 프러포즈에 결국 둘은 연인 사이가 된다. 미국 생활을 하는 데 우미 마사미는 큰 힘이 되어주었다. 사실 손정의가 월반을 거듭한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홀리네임스 칼리지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도 우미 마사미 덕분이었다. 그녀는 홀리네임스 칼리지에 다니고 있었는데, 손정의는 하루라도 빨리 그녀와 함께 학교에 다니고 싶었던 것이다. 21세가 되자 손정의는 우미 마사미에게 더 이상 부모님 돈을 받지 말라는 말로 프러포즈를 했고, 버클리 재판소에서 결혼을 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일에 빠져있던 손정의는 첫 번째 결혼식에 늦게 도착했다. 이미 판사가 자리를 떠났기 때문에 첫 번째 결혼식은 무산되었다. 일주일 후에 다시 결혼식을 약속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손정의는 일에 빠져 지각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손정의는 담당자들에게 부탁해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에는 원래 증인이 있어야 하는데, 증인도 준비하지 못한 손정의는 경비에게 부탁해 겨우 결혼식을 치를 수 있었다. 신혼여행을 떠나는 도중에 손정의는 언론 재벌인 윌리엄 허스트의 저택이었던 허스트 캐슬을 보았는데, 이때 그는 우미 마사미에게 저런 호화로운 저택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의 약속은 40세가 되기 전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우미 마사미는 결혼 후에 일에 빠진 남편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서른다섯 살에 집 한 칸 없는 손정의를 무척 걱정했다고 한다. 임대주택에 살았던 손정의는 40세가 되자 약 3173m²(9백60평)가 넘는 땅에 40억엔을 들여 3층짜리 초호화 저택을 지었다. 그 집이 얼마나 호화롭고 대단한지 일본의 주간지에서 헬기를 동원해 그 모습을 촬영할 정도였다. 주변에서는 집이 너무 사치스럽다고 비난했지만, 손정의는 아내와 한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에 매우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이렇듯 손정의는 자신의 명예나 명성보다는 우미 마사미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첫사랑인 우미 마사미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는 것은 그녀가 손정의를 위해 많은 고생과 희생을 감내했기 때문이다. 손정의가 오랫동안 지켜온 한국 국적을 버리고 일본 국적을 취득할 때 자신의 성씨만은 바꾸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단 한 사람만 사용하는 희귀 성을 귀화하는 사람에게 허용할 수 없다며 손정의가 일본식 성을 사용하도록 강요했다. 이때 손정의의 부인 우미 마사미가 나섰다. 일본 사람인 우미 마사미가 직접 자신의 성을 손씨로 바꾼 후 남편이 한국에서 유명한 요리사라면서 손이라는 성씨를 꼭 써야 한다고 법원에 호소한 것이다. 이런 우미 마사미의 노력 덕분에 손정의는 귀화한 후에도 자신의 성씨를 그대로 고수할 수 있었다.
손정의가 만성 간염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도 아내는 헌신적으로 그를 간호해주었다. 손정의가 투병 생활을 하면서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의 아내 때문이었다. 그의 아내는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음에도 병원에 입원한 남편을 적극적으로 간호했던 것이다. 손정의는 새로 태어날 아이와 부인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질 수 있었고, 2년여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우리는 보통 성공한 당사자에게만 초점을 맞추곤 한다. 하지만 손정의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 주변에서 그들을 헌신적으로 내조한 아내의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스티브 잡스에게 유일하게 영향력을 행사한 아내, 로렌 파월

결혼은 때론 사람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는 결혼으로 개과천선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스티브 잡스를 비난할 때 단골로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그가 젊은 시절 딸을 버리고 외면했다는 사실이다. 스티브 잡스 본인이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음에도 딸을 내팽개쳤으니 그의 행동은 더욱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37세라는 늦은 나이에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다가 만나게 된 로렌 파월과 결혼한 이후 스티브 잡스는 완전히 변했다. 스티브 잡스는 그가 그토록 외면했던 리사를 데려와 정성스럽게 양육했다. 고집불통으로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기로 유명한 스티브 잡스는 가족의 의견에는 적극적으로 귀 기울였다. 아내인 로렌이 집이 너무 크다면서 좀 더 작은 집으로 이사 가자고 하자, 즉시 이사를 했다. 세탁기 하나를 살 때도 가족과 한 달을 넘게 토론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오직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던 고집불통의 젊은이가 어느덧 온화한 아버지가 되어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독불장군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서 원맨쇼가 아니라 팀 스포츠를 강조한 셈이다. 실제로 직원들에게 스티브 잡스는 자애로운 후원자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스티브 잡스는 44세 때 타임지와 나눈 특별 인터뷰에서 결혼이 자신에게 매우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는 과거에 사람을 해고하는 것이 힘든 일이기는 했지만,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간과한 것이 있었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직원들에게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해고된 사람들이 가족들에게 달려가 자신의 해고 사실을 알리는 모습을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는 것이다.

일중독에서 벗어나 자선사업가로, 빌 게이츠

가족의 행복을 통해 극적인 변화를 맞이한 사람으로는 스티브 잡스의 영원한 라이벌 빌 게이츠를 꼽을 수 있다. 그의 변화 역시 스티브 잡스만큼이나 놀랍다. 빌 게이츠는 원래 일만 아는 사람이었고 연애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40세가 되어서야 회사 직원이었던 멜린다와 결혼했다. 그런데 결혼 이후 빌 게이츠는 완전히 달라졌다. 일중독자였던 빌 게이츠는 스스로 일을 줄이고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아이를 가진다는 게 세상에 그 어떤 일보다도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람은 가정과 일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며 행복도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결혼 이후 가장 중요한 변화는 그가 자선사업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빌 게이츠의 아버지가 자선사업을 권유했지만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 멜린다의 끊임없는 설득에 빌 게이츠는 자선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한때 세상에서 가장 탐욕적인 기업가라는 비난을 들었던 빌 게이츠는 멜린다의 영향으로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자애로운 자선가로 명성을 얻고 있다. 그런데 IT 갑부 중 결혼한 이후 아내와 함께 자선사업에 나선 것은 빌 게이츠뿐만이 아니다. 이는 IT 갑부들의 전형적인 삶에 가깝다. 인텔의 창업자인 고든 무어는 부인인 베티 무어와 함께 고든&베티 무어 재단을 설립해서 70억4천6백만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2006년 기준으로 빌 게이츠 부부의 54억5천8백만달러를 훨씬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아내와 함께 자선사업을 펼친 IT 갑부들

마이클 델은 빌 게이츠처럼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딴 마이클 & 수전 델 재단을 설립했다. 원래는 특정한 목표를 가지고 기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돈을 지원해주었다. 하지만 4명의 아이를 양육하면서 빈곤층 가족과 어린이들을 집중적으로 도와주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마이클 & 수전 델 재단은 10억달러 정도를 기부했고 이미 비영리 단체에 7억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이 재단은 미국의 재단 중 53위의 규모다. 두 부부는 역할 분담이 뚜렷한데, 마이클 델은 시스템과 인프라에 힘을 쏟고, 수전 델은 사람들 간의 교류에 집중하고 있다. 이베이의 창업자인 피에르 오미디아르는 부인과 함께 자신의 모교인 터프대학에 1억달러를 기부하면서 본격적으로 자선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아내와 함께 자선 벤처 펀드인 오미디아르 네트워크를 설립해 활발히 자선사업을 하고 있다. 제프 베조스 역시 부인인 매킨지 베조스와 함께 둘의 모교인 프린스턴대학교에 1천5백만달러를 기부했다. 앤디 그로브는 질병 치료와 교육 분야에 집중적으로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그의 모교인 뉴욕시립대에 2천6백만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그는 그로브 재단을 설립해 교육 부문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데, 그의 부인인 에바는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경우 기부에 인색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신 그의 부인인 로렌 파월은 빈곤층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활발히 자선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기부와 관련해서는 손정의의 활약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손정의는 일본 대지진의 구호 기금으로 1백억엔을 기부하기로 했다. 손정의가 사장으로서 받는 보수 역시 구호 기금으로 전액 기부하기로 하면서 일본에서는 총리가 되어달라는 부탁까지 받았다.
필자는 IT 갑부들의 모습을 통해 삶의 균형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그들은 결혼으로써 일과 가족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행복을 누리고 있다. 또 그들이 열심히 일한 만큼 사회에 공헌하기 위한 노력으로 자선사업에도 힘을 쏟으며 보람을 얻고 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업적을 이룬 수많은 이들이 가정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성공의 기준이란 단순히 돈이 목적이 아니라, 끊임없이 일과 가족의 균형점을 찾으며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자신들의 성공한 삶을 통해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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