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of Si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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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04, 2019

에디터 이혜미 | ⓒAlede Nicolai

행사를 하루 앞둔 11월 3일 오후. <스타일 조선일보>는 서울에서 열릴 맨즈 유니버스 이벤트 참석을 위해 방한한 에르메스 남성 실크 컬렉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크리스토프 고누(Christophe Goineau)를 만나고자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로 향했다. 건물 3층에 위치한, 실크와 가죽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에서 그와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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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Chosun(이하 S) 바로 내일, 서울에서 에르메스의 남성 제품을 소개하는 큰 이벤트가 열립니다. 실크 컬렉션 디렉터인 당신의 ‘에르메스 맨즈 유니버스’는 어떤 모습입니까?

Christophe Goineau(이하 C) 1940년대 초부터 시작한 에르메스 실크 컬렉션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사실 남성과 여성 유니버스를 통괄하는 에르메스의 철학과 정신은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남성 고객도 여성 스카프를 구매할 수 있죠. 다만 남성 총괄 아티스틱 디렉터인 베로니크 니샤니안과 저는 컬렉션 구상 단계에서 남성에게 좀 더 어필할 수 있는 제품을 생각합니다. 가령 실크 제품의 경우 여성보다 남성이 더욱 선호할 프린트(모티브)를 고안하고, 그들이 스카프를 연출하는 방식을 고려해 제품을 디자인합니다. 하지만 선택권은 온전히 고객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S 매 시즌 선보이는 실크 컬렉션의 전반적인 디렉팅 방식이 궁금합니다. 에르메스는 특정 컬러와 패턴, 소재를 통해 유행을 제시하는 브랜드도 아닌 데다, 실크 컬렉션 내에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닌 다채로운 라인이 존재하니까요.

C 우선 베로니크가 시즌에 따라 특정한 컬러 팔레트를 제시하면 저는 광범위한 컬러 중 적당한 것을 추려 실크 액세서리군을 전개합니다. 매 시즌 진화 수준의 큰 변화는 없는 편이에요. 기본 라인업에 미묘한 변형을 더하는데, 이것이 곧 해당 시즌을 정의하게 되죠.

S 디자인, 컬러링, 프린팅 등 제품을 생산하는 여러 과정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C 형태, 소재, 컬러 모두 중요하지만, 오브제의 최종 성공 여부를 가름하는 컬러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디자인이 훌륭하더라도 컬러와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면 뛰어난 제품이 탄생하기 어려우니까요. 디자인은 색을 제대로 발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보조 수단이라 생각합니다.


S 그렇다면 제품에 가장 즐겨 사용하는 컬러는 무엇인가요?

C 블루입니다. 제가 아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컬러예요. 흔히 에르메스 하면 고유의 주황색을 떠올리곤 하는데, 제 생각에는 블루야말로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컬러인 것 같아요. 강하지 않고 균형 잡혀 있으며, 스카이 블루부터 머린 블루까지 여러가지 톤으로 풀어낼 수 있어 다양한 것을 함께 사용해도 과하지 않거든요. 대부분의 문화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며 하늘, 바다와 같은 자연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고요. 실현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컬렉션 전체를 블루 컬러로만 구성해보고 싶어요. 사실 지금도 제품 개발 단계에서 샘플을 만들 때 항상 블루 컬러로 먼저 제작하곤 합니다. 마치 ‘매직 필터’ 같아서, 물건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나게 해주거든요. 색상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란 대단한 것 같아요. 그 조합 역시 무한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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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당신의 옷장에 스카프가 몇 장이나 걸려 있는지 정말 궁금했어요. 더불어 가장 즐겨 착용하는 것은 어떤 제품인가요?

C 사실 스카프를 아주 많이 갖고 있는 편은 아니에요. 다만 완제품과 더불어 미완성 프로토타입까지 보유하고 있죠. 스카프로 가장 선호하는 소재는 캐시미어와 실크 혼방 제품입니다. 부드러운 동시에 잘 미끄러져 내리지 않거든요. 사이즈를 놓고 보았을 땐 100×100cm 크기의 남성용 ‘까레’를 좋아해요. 동일한 라인의 여성용 모델보다는 좀 더 큰데, 목에 훌훌 둘러 연출했을 때 길이가 적당하게 떨어지는 느낌이 좋거든요. 오늘 착용하고 온 블루 컬러 ‘로장지’ 역시 손쉽게 우아한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어 애용합니다. 평소 ‘심플리시티’를 추구하는데, 편안하고 멋스러운 룩을 연출하기에 스카프만 한 아이템이 없는 것 같아요.)


S 지난해 여러 도시에서 개최한 ‘실크 믹스’ 행사 관련 인터뷰를 보니 실크 제품과 감정의 관계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하셨어요. 이전까지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라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C 에르메스 메종에서는 ‘관계’라는 개념이 중요한 것 같아요. 비단 실크 컬렉션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에르메스의 특정 제품을 보았을 때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기억, 사랑을 표현한 기억, 인생의 특별한 날 착용했던 기억 등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듯해요. 추억을 상기시키는 감정과 연관된 오브제 역할을 하는 거죠. 사실 메종에서 마주친 고객이나 주변 지인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칭찬 중 하나는 “이 스카프를 10년 동안 매고 있는데 여전히 너무 좋다”라는 말이에요. 포부르 생토노레 매장에서 만난 한 고객에게도 아주 오래된 실크 제품은 어떻게 처리하는지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다른브랜드의 제품은 낡고 오래되어서 버렸는데, 에르메스 타이만큼은 버릴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타이에 얼룩이 졌는데도 기념품처럼 간직하고 싶은, 특별한 물건이라면서요.


S 30년 이상 에르메스에 몸담았고, 현재 실크 컬렉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는 당신에게 도전 과제가 있나요?

C 6개월마다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여야 하는 것이 도전 그 자체죠. 모던함을 가미하는 동시에 에르메스 고유의 스타일을 잃지 않아야 하니, 그 중간에서 균형을 찾는 게 어렵게 느껴져요. 마치 작가가 글을 쓸 때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잃지 않는 선에서 색다른 스토리를 풀어내야 하는 것처럼요.


S 그렇게 컬렉션을 반복해서 만들다 창의적인 영감이나 재충전이 필요할 때는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세요?

C 한국에 옵니다.(웃음) 정말이에요. 한국 젊은이들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모습이 많은 영감을 줍니다. 여행이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2주 전에는 메종의 동료와 함께 멕시코시티를 방문했는데, 그 독특하고 흥미로운 분위기를 통해 새로운 자극을 얻고 왔죠. 조금 웃기게 들릴 수도 있는데, 길거리에서도 관심 있는 요소가 눈에 들어오면 모르는 사람을 쫓아갈 때가 있어요. 그 사람이 착용한 패브릭 아이템의 컬러, 모티브 등을 눈에 익히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또 다른 영감의 원천은 에르메스의 아카이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카이브라고 하면 먼지가 쌓여 있는 과거의 것, 지루한 무언가를 연상하곤 하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는 아카이브를 ‘무게’가 아닌 ‘행운’이라 여깁니다. 1950~70년대 제품을 보면 현재보다 훨씬 대담하고 화려한 디자인이 많아 흥미로워요. 이를 가볍게 변형하거나 색상에 변주를 주어 컬렉션에 응용하기도 하고요.


S 오늘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디자이너, 아티스트 등은 한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범위에 걸친 창의적 작업을 이어나갑니다. 라이프스타일과 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메종에 오랜 시간 몸담은 만큼 실크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C 음악을 정말 좋아합니다. 음악을 듣지 않은 하루는 마치 낭비한 시간처럼 느껴질 정도로요. 그 밖에 건축, 실내 디자인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집이 곧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다는 점이나 다양한 배치 및 조합으로 전혀 다른 느낌을 연출할 수 있는 점 등이 흥미로워요.


S 지난해 많은 사랑을 받은 실크 믹스 행사처럼, 다른 장르를 혼합한 재미있는 프로젝트 또는 제품 개발 계획이 있나요?

C 남성과 여성 실크 제품을 통합한 컬렉션 개발을 생각 중입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색다른 변화를 위해 페미닌한 동시에 매스큘린하고, 아티스틱한 컬렉션을 기획해보면 어떨까, 생각해요. 2020년에는 남성 유니버스와 여성 유니버스가 조우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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