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지상(紙上) 전시_Mindscape in our Landscape_04_김정아(Jung ah Kim)_감정이 발화되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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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6, 2022

Exhibition Concept 고성연 글·기획 김연우(독립 큐레이터)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마스크 없이 유유자적 산책을 즐기는 소소한 일상을 되찾은 요즘이다.
주변을 정처 없이 거닐다 보면 익숙했던 풍경이 달라 보이기도 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어떤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은 19세기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표현을 빌려 거리를 배회하며 관찰과 사유를 통해 도시를 경험하는 ‘산책자(fla^neur)’의 개념을 정립했다. 산업혁명 이후 급변한 사회에 새로이 등장한 산책자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근대적 삶에서 느린 속도와 여유를 가지고 삶의 풍경 속에 감춰진 것을 발견하고자 했다. 자신을 주체적인 관찰자로 설정한 이들은 산책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텍스트를 읽어내고 고찰한 학자이자 예술가였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며 감각했던 산책자처럼, <스타일 조선일보>의 ‘지상(紙上) 갤러리’에서 소개하는 다음 4명의 아티스트는 각자의 방식으로 관찰한 동시대 일상 풍경의 단면을 펼쳐 보인다.




김 정 아 Jung ah Kim

감정이 발화되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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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여러 명의 여인이 바쁘게 어디론가 향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알몸에 검정 장갑과 부츠만 착용한 채 힘을 합쳐 커다란 꽃 더미를 운반하고 있다.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꽃을 따서 훔치는 이들의 정체는 작가의 상상 속에서 탄생한 ‘꽃도둑’들이다. 수십 점의 드로잉으로 이루어진 ‘꽃도둑’ 연작은 공방에서 쓰고 남은 자투리 종이에 그때그때 사용 가능한 재료로 작업한 흑백 그림이다. 작가는 먹을 담은 병과 펜, 종이를 들고 다니며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주어진 재료를 사용하다 보니 종이의 사이즈가 모두 제각각인데, 오히려 다양한 화면 크기에 맞춰 장면을 구성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와 사건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됐다. 물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데는 매끄러운 스토리텔링이나 개연성이 반드시 동반되지는 않는다. 삶이 그러하듯, 각 컷이 품고 있는 그 순간의 감상에 충실하면 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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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의 작업은 작가가 경험하고 감각하는 내면의 여러 감정을 기반으로 한다.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오랜만에 겉모습과 사용하는 언어가 비슷한 사회의 구성원이 된 작가는 우연한 계기로 그동안 막연히 갈구해온 ‘유대감’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처음 느껴본 따뜻하고 원초적인 평등함은 이후 서로 연대하며 ‘용기’를 얻고 미지의 상황으로 나아가는 꽃도둑들의 모습으로 발현되었다. 두려움, 희망, 좌절, 용기 등, 삶을 살아가며 누구나 느껴봤을 법한 감정은 작가가 일상에서 익숙한 풍경을 조우하는 특정한 순간에 발화되어 그림으로 옮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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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에서’는 산책 중 관찰하게 된 작업실 근처의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한 추상화 연작이다. 중앙부에 언뜻 보이는 눈동자 형상은 관람객을 응시하듯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는데, 마치 작가의 습지 속에서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작가는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실제 풍경 그대로의 사실적인 재현을 지양한다. 대신 매일 같은 장소를 방문하며 매번 경험하는 감각과 인상을 그날그날 기억할 수 있는 만큼만 그린다. 흙, 물과 함께 뒤엉킨 각종 자생식물이 번식하고, 시들고, 다시 자라나는 과정에서 축적되고 순환되는 습지와 같이, 작가의 내면이 투영된 캔버스 위의 습지도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겹으로 층층이 쌓여가며 천천히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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