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2021 Summer SPECIAL] 지상(紙上) 전시_Soul Mending 03 호 추 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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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7, 2021

Exhibition Concept 고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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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추 니엔 Ho Tzu Nyen
기억과의 화해


● 캄캄한 방, 거대한 스크린 2개가 마주 선 채 아스라한 불꽃을 피워낸다. 얼굴을 베일로 가린 여성이 노이즈 음악을 배경 삼아 엄숙한 곡조를 뽑아낸다. 화면이 점차 밝아지며 횃불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을 비춘다. 뜨겁게 외치는 함성과 불길이 교차되며 혁명은 피로 물든다. 바싹 말라버린 분수대를 둘러싼 저항의 횃불은 추모와 위로의 촛불이 된다.


●● 싱가포르 작가 호 추 니엔의 애니메이션 설치작 ‘49번째 괘’(2020)는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담아낸 작품이다. 당시 상황을 묘사한 영화, 기사 사진을 제작 자료로 삼았는데 실제 제작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의 ‘숨 쉬는 스크린 스튜디오’가 맡았다. 이는 북한을 암시한다. 북한은 해외에서 수주한 예술 작품이나 상품 제작도 모두 검열한다. 그 결과 특정 시대나 지역을 알 수 없도록 처리하면서 오히려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됐다. 북한과의 미스터리한 협업은 역사를 다시 보고 화해를 시도하는 동시에 분열된 2021년 한국의 현실까지 담아내며 작품에 다층적인 의미를 더한다. 보컬리스트 백현진과 박민희가 부른 두 주제곡은 실험 음악가 류한길의 리믹싱을 통해 엇갈리고 교차된다. 이들은 ‘혁명’을 상징하는 ‘혁(革)’을 담은 고대 점술서이자 철학서 <주역>의 49번째 괘에 대한 풀이를 노래하며 폭력의 트라우마를 겪어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위안을 건넨다. “양심이 바르고 진정한 개혁을 바라는 사람이 혁명을 일으킨다. 덕을 지닌 사람은 역사의 질서를 바꾸고 시대의 의의를 밝힌다. 결단의 때가 되면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것이다.”


●●● 한편 작가는 자신이 속한 동남아시아 역사의 복원을 꾀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종교도, 언어도 전혀 다른 국가들로 이뤄져 있지만, 20세기 초엽 세계대전 때 일본 연합군의 지배를 받으며 한 권역으로 묶인 범주화 방식이 현재까지 이어져왔다.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HMD)를 쓰고 3백60도로 관찰할 수 있는 그의 애니메이션 작품 ‘울림을 위한 R(R for Resonance)’(2019)은 동남아에서 고대부터 두루 쓰여온 악기인 징의 기원을 좇으며, 징의 ‘울림’을 분절된 동남아 역사를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모델’로 바라본다. 호 추 니엔은 “우리 눈은 한쪽 면만 볼 수 있어 결코 전체적인 조망을 할 수 없다. 가깝고 먼 것, 앞과 뒤를 다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날로 악화되는 정치적 분열과 확증 편향형 사고를 ‘치유’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글 채연(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ART + CULTURE 2021 Summer 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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