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Starry Aff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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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07, 2022

이탈리아의 오래된 고성에서 또 한번 구찌의 마법이 펼쳐졌다. 복잡하지만 독창적인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패션은 우주와 연결되어 관객들을 잠시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달빛에 숨 죽이고 밤하늘의 별에 매료되었던 2023 구찌 크루즈 컬렉션 현지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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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유명한 카스텔 델 몬테는 창의적인 천재였던 프리드리히 2세가 1240년경에 건축을 의뢰한 걸작이다. 외딴 곳에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성은 해발 540m인 이탈리아 남동부의 풀리아 지역에 자리한다. 하루 종일 햇빛이 쏟아지는 수평의 언덕, 건축적인 완벽함과 북유럽, 이슬람 문화, 고대 등 다양한 요소가 조화를 이루는 카스텔 델 몬테는 여러 민족, 문화, 문명 및 종교가 교차하는 지중해를 완벽하게 표현한다. 이 절대적 존재감의 건축물이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2023 크루즈 컬렉션 무대로 선택한 곳이다. 미켈레는 이곳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탐구한 아이디어를 반영한 1백1가지 룩의 방대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패션계의 철학자로 불려도 손색없는 미켈레를 사로잡은 건 독일의 문학평론가이자 철학가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과 그의 별자리 사유였다. 이 천재 사상가에게 역사는 현재와 연결되지 않는 단순한 유물의 집합체가 아니다. 그는 지나간 과거는 현재를 이해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과거가 현재를 조명하거나 현재가 과거를 조명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형상은 이전에 존재했던 것이 현재와 갑작스럽게 연결되면서 별자리를 형성하는 어느 지점에서 발생한다.” _by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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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는 베냐민으로 인해 철학적 개념으로 재탄생했다. 하늘의 별들처럼 언뜻 보기에는 흩어져 각자 고립된 듯 보일 수 있는 것들이 베냐민이라는 철학자의 눈을 통해 연관성을 지닌 집합체로 변화한다. 별자리는 과거와 현재,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작은 파편을 결합한 뜨겁고 빛나는 또 다른 세상인 것이다. 이 심오하고 초현실적인 사유가 구찌의 2023 크루즈 컬렉션 주제인 코스모고니(cosmogonie)로 태어났다. 미켈레는 언제나 해독하기 어려운 의미가 담긴 프리즘과 같은 컬렉션을 선보이곤 한다. 2023 크루즈 컬렉션 역시 프리즘처럼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고 싶어 했던 우주론과 별자리의 이론처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디테일로 장식된 의상은 결코 허황되지만은 않다. 우아한 귀족풍의 숙녀, 십자군을 연상시키는 기사, 중세 초상화에서 본 듯한 소녀, 낭만적인 시대물의 여주인공, 1960~70년대 복고풍의 학생, 사이키델릭한 전사…. 시대와 상상을 뛰어넘는 의외의 스타일링과 파격적인 디자인의 소품 등은 충분히 아름답고 드라마틱했다. 미켈레에 의해 창조된 구찌의 패션 연금술은 관객들을 잠시 별이 빛나는 우주로 이끌었다. 견고한 요새처럼 보이는 성벽에 비친 파편 같은 별자리들, 자연 그대로의 현상으로 하늘에 떠오른 붉은 보름달, 끊임없이 이어지는 매력적인 모델들의 향연.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겐 마법과 같은 밤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독창적이고도 복잡했던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컬렉션은 더 이상 구찌에서 볼 수 없을 듯하다.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 코스모고니의 밤. 그 아름답고 신비스러웠던 여정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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