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madic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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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 2022

글 고성연(밀라노 현지 취재)

탄생 10주년 맞이한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철저한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한 섬세한 수공예 노하우와 만나 창조해내는 한정판 가구 컬렉션.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Objets Nomades) 컬렉션은 ‘노마드’라는 단어가 시사하듯 ‘여행 예술’을 철학과 가치로 삼아온 브랜드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꽤 오래도록 자유로이 여행을 즐기지 못했지만, 디자이너들의 상상력은 그러한 제약을 가뿐히 넘어서면서 ‘영혼과 정신의 자유로움’을 담은 작품으로 승화된다.
그리고 반갑게도 물리적으로도 다시금 ‘회동’할 수 있었던 지난 6월 초, 밀라노 가구박람회 현장에서 마주한 오브제 노마드 프로젝트의 참여 디자이너들은 놀라운 회복 탄력성과 창조력을 보여줬다. 어느새 탄생 10주년을 맞이한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의 이번 전시 무대는 193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건축물. 절대적인 상징성을 지닌 밀라노라는 디자인 도시를 다시금 즐길 수 있었던 영감 넘치는 현장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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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는 단지 이탈리아의 수도가 아니라 현대 디자인의 메카이자 수많은 디자이너에게 일종의 정신적 고향이기도 하다. 특히 해마다 춘삼월, 밀라노 가구박람회를 일컫는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 Milano)’가 열리는 기간에 유럽인은 물론 전 세계에서 문화 예술계 종사자와 애호가가 몰려드는 커다란 축제가 도시 곳곳에서 펼쳐지는데, 이 떠들썩한 주간을 ‘밀라노 디자인 위크’라고 부른다. 이 주간이 호텔 숙박료를 4~5배까지 끌어올릴 만큼 인기 높은 ‘글로벌 축제’로 자리매김한 데는 밀라노 외곽에 자리한 로 피에라(Rho Fiera) 전시장에서 열리는 가구 브랜드 바이어들의 상거래를 위한 박람회 자체의 권위도 있지만, 시내 여기저기에서 전개되는 장외 전시를 뜻하는 ‘푸오리 살로네(Fuori Salone)’라는 존재의 역할이 아주 컸다. 패션 위크가 아님에도 유수의 명품 패션 하우스들이 저마다의 카리스마를 뽐내는 다채로운 방식으로 참여하며, 디자인 산업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기업이나 브랜드도 각자의 개성을 내세운 행사를 앞다퉈 선보인다. 경쟁력 있는 글로벌 브랜드라면 ‘살로네라는 무대를 피해 갈 수 없다’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마케팅의 격전지이지만, 유·무형의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즐기는 관람객들에게는 영감 어린 추억과 경험을 담뿍 선사하는 잔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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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in Milan!’, 다시 찾아온 글로벌 디자인 축제
이런 배경에서 팬데믹 탓에 이 팔색조 같은 ‘봄의 제전’이 몇 년 동안이나 나래를 펴지 못한 현실은 밀라노라는 도시에 제대로 좌절을 안겨줬다. 더구나 ‘소통’과 ‘교류’가 중시되는 디자인업의 특성상 살로네처럼 트렌드와 수요를 좌우하는 커다란 플랫폼의 공백은 더 크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드디어 올해 밀라노발(發) 팡파르가 다시 울려 퍼졌다. 밀라노 가구박람회 60회를 맞이해 더욱 뜻깊었던 올해의 디자인 주간은 이례적으로 초여름인 6월 초에 막을 올렸는데, 오랜만에 다수가 어우러진 축제의 현장은 마치 ‘고향’에 극적으로 돌아온 듯한 , ‘감개무량’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들과 손잡고 장인 정신과 수공예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컬렉션을 빚어내는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프로젝트에도 올해는 남다른 해다. 지난 2012년 이래 꾸려온 이 글로벌 프로젝트가 10주년을 맞이한 데다가 무려 3년 만에 밀라노에서 협업 디자이너들이 ‘재회’를 했기 때문이다.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은 오늘날 문화 예술계를 이끌어가는 산업 디자이너들이 루이 비통의 브랜드 핵심 가치인 ‘여행 예술(Art of Travel)’에서 영감을 받아 저마다의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한정판 아트 퍼니처와 소품으로 구성되는데, 10년에 걸쳐 창조적 확장을 거듭하면서 현재 14팀의 다국적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중에는 ‘이름’ 자체가 곧 ‘브랜드’인 명성 높은 디자이너도 포함되어 있다. 독보적인 예술 감성으로 잘 알려진, 브라질이 낳은 거장 캄파냐 형제(Campana Brothers), 스페인 출신으로 밀라노 디자인계의 ‘여왕’으로 불리는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Patricia Urquiola),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매혹의 디자인 언어를 지닌 네덜란드의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르스(Marcel Wanders),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본 디자이너 요시오카 도쿠진(Tokujin Yoshioka) 등의 이른바 슈퍼 디자이너들이다. 또 실험적이면서 심미성도 빼어난 디자인으로 유명한 스위스 3인조 그룹 아틀리에 오이(Atelier Oi), 재기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디자인 감성의 2인조인 로 에지스(Raw Edges), 황홀한 색채 감각을 지닌 프랑스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인디아 마다비(India Mahdavi) 등의 스타 디자이너들도 있다. 이들은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팀과 각자의 작업을 해나가지만 디자인 마이애미와 살로네 같은 글로벌 행사가 열리는 도시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영감을 주고받기에 느슨한 유대를 지닌 ‘디자인 패밀리’ 같은 그룹이 되어가고 있다. 팬데믹의 장기화로 수년간 발이 묶이는 바람에 간만의 회동인지라 올해는 “가족을 다시 만난 것 같다”면서 유난히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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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의 꿈’을 향한 디자이너들의 창조적 여정
프랑스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는 도시 자체는 그 도시에 살아가는 이들의 ‘집단 기억’이라는 견해를 펼친 바 있다. 밀라노는 많은 디자이너들에게도 ‘집단 기억’의 도시이자 공간이며, 이 도시 곳곳의 장소들 역시 뚜렷하기도 하고 희미해진 경우도 있지만, 소중한 기억의 대상들이지 않을까 싶다. 이번 밀라노 행사에서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의 무대는 80년도 더 된 낡은 차고 건물을 새 단장한 가라지 트라베르시(Garage Traversi)가 낙점됐다. 건축가 주세페 데 민(Giuseppe De Min)이 1939년 실험적인 차고로 설계한 건물로, 번화한 몬테 나폴리오네 거리 근처에 있다. 장소성이 남다른 건축물을 재발견하는 데 뛰어난 루이 비통다운 선택이다. 밀라노를 사랑하는 이들의 ‘집단 기억’ 속에서 새롭게 영감을 끄집어낼 만한 공간으로 재탄생한 건축물. 바로 그곳에서 2개 층에 걸쳐 전시된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의 ‘신작’을 들고 나온 세 팀의 주인공들을 직접 만나봤다. 먼저 런던을 주 무대로 활약하는 ‘듀오’인 로 에지스. 야엘 메르(Yael Mer), 샤이 알칼라이(Shay Alkalay) ‘커플’이 이끄는 디자인 스튜디오의 이름이다. 이들은 오브제 노마드 프로젝트의 초기부터 합류했는데, 꽃잎을 겹쳐 만든 듯한 디자인이 매력적인, 앉는 부분이 접히는 의자와 접이식 조명 등으로 이어져온 ‘콘서티나 컬렉션(Concertina Collection)’과 가죽과 천, 색상의 여러 조합이 저마다 다른 개성을 자아내는 앙증맞은 ‘돌스(Dolls)’ 체어 시리즈 등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왔다. 올해 살로네 무대에서는 탄소섬유로 완성한 뼈대와 둥글고 비스듬한 유리 상판의 조화가 인상적인 ‘실외용 코스믹 테이블(Cosmic Table)’을 선보였다. 실내·실외용이 따로 있는데, 전자는 밝은 색감의 루이 비통 가죽으로 겹겹이 감싼 반면 신작 실외용은 에나멜과 메탈 소재로 마감 처리를 했다. 이처럼 매력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축해나가고 있지만 사실 이들은 “처음 오브제 노마드 프로젝트에 임했을 때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는 데 3~4년이 걸렸다”고 회고했다. ‘열린 논의(open debate)’와 장인들의 노하우, 그리고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팀의 간섭적이지 않은 조언 덕분에 결국은 해결책을 발견했다고. “루이 비통 팀은 마치 갤러리 같았어요.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말하거나, 특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았죠. 그보다는 아티스트의 비전과 영감을 바탕으로 하는 협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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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공동 플랫폼’에서 비롯된 에너지와 동행 의식
브라질 태생의 캄파냐 형제는 중남미에서 배출한 최고의 ‘형제’ 디자이너다. 형인 움베르토 캄파냐는 주로 해외를 누비면서 ‘대변인’ 역할을 겸하고 있고, 동생인 페르난도 캄파냐는 그들의 본거지인 상파울루에 주로 머물면서 ‘리서치’를 한다. 올해도 움베로트가 밀라노를 찾았는데, “팬데믹은 삶에 큰 충격을 줬다”면서 밀라노에의 귀환을 감격스러워했다. 한 달에 두 차례는 여행길에 오르던 그의 일상이 스튜디오를 8개월이나 닫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서 창조적 영감은 잃지 않았나 보다. 지난해 말 디자인 마이애미에서 동심을 일깨우는 알록달록한 색채의 미학이 돋보이는 ‘아구아카테(Aguacate)’와 머랭 과자 모양을 연상시키는 ‘메렝게(Merengue)’를 내놓은 데 이어 이번에도 신작을 선보였다. 구름 모양의 인기 작품인 모듈식 소파 ‘봄보카(Bomboca)’의 4인용 버전인 ‘봄보카 GM’이다. 단단한 가죽 커버 베이스에 패브릭을 씌운 탈착식 쿠션 11개로 구성되어 있다. 봄보카는 브라질에서 결혼식이나 아이들의 파티에서 즐겨 먹는 과자에서 따온 이름인데, 실제로 캄파냐 형제의 작품이 대부분 그렇듯 동심을 북돋우는 매력이 담겨 있다. “실제로 우리 작품을 떠받치는 아이디어의 바탕에는 ‘아이들’이 있어요. 다정함과 사랑을 곁들인, 어린 시절의 추억과 연결돼 있는 감성의 디자인이거든요.” 움베르토 캄파냐의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만난 친구들끼리 꾸린 3인이 이끄는 디자인 스튜디오 아틀리에 오이. ‘재료(material)’에서 출발해 스토리텔링으로 발전하는 그들의 디자인 미학은 루이 비통의 ‘가죽’ 노하우와 만나 매혹적인 오브제들을 탄생시켰다. 멋스럽게 짠 가죽 해먹이라든지 루이 비통의 트렁크 제작 기술에 종이접기를 활용해 손쉽게 가방처럼 접을 수 있는 ‘스툴’, 다채로운 색상의 가죽 꽃 장식, 가죽 스트랩의 긴장감이 아름답게 녹아든 벨트 체어 등이다. “오브제 노마드 프로젝트는 이제 10년이 되다 보니 양측이 디테일을 공유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서로 진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여러 다른 팀들을 지켜보면서 얻는 창조적 영감도 있고요.” 점점 풍성해지는 커다란 컬렉션의 일부가 됐음을 느낀다는 이들은 이번에는 벨트 체어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신작 3점을 공개했다. 길게 누울 수 있는 ‘벨트 라운지 체어(Belt Lounge Chair)’와 메탈 프레임을 사용한 높은 의자 ‘벨트 바 스툴(Belt Bar Stool)’, 그리고 휴대성에 초점을 둔 ‘벨트 사이드 스툴(Belt Side Stool)’ 등으로 ‘벨트 시리즈’를 근사하게 확장했다. 이처럼 ‘열일’을 해나가는 원동력의 하나로 이들은 “3인조 밴드처럼 일한다”면서 ‘균형’을 적절히 유지할 수 있는 삼총사만의 시너지를 명쾌하게 인정했다. 점점 정체성을 다져가면서도 창조적 진화의 나래를 펴고 있는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의 다음 행보가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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