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어떤 전시에 열광하는가

조회수: 82
7월 01, 2026

글 양혜연(객원 에디터)

세 가지 키워드로 보는 전시 트렌드


문화 예술 애호가라면 요즘 전시를 보러 가는 이유가 작품 감상 하나뿐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공감할 것이다. 그 배경에는 오늘날 미술관과 갤러리가 동시대의 취향과 관심사를 담아내는 문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는 변화가 존재한다. 관람객들은 작품 감상은 물론이고 보다 참신한 방식으로 공간을 경험하고, 자신만의 기록을 남기며, 새로운 영감을 얻길 기대한다. 그 스펙트럼과 깊이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전시를 기획하는 방식도 점차 달라지고 있고, 우리가 예술을 만나는 방식 역시 조금씩 바뀌고 있다. 한국 근현대 거장에 대한 블록버스터급 재조명부터 참여형 전시 공간 구성, 다양한 굿즈까지. 모두 동시대를 살아가는 관람객들의 관심사와 욕망이 반영된 풍경이다.


1
한국 근현대 거장에 집중된 관심


누군가는 이 키워드를 보고 ‘한 발 늦은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근현대 미술에 대한 대대적인 재조명은 2010년대 중반부터 이어지고 있다. 그 시발점은 2015년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병행 전시로 기획된 〈단색화(Dansaekhwa)〉(2015. 5. 8~8. 15)를 들 수 있다. 김환기, 이우환, 박서보, 정상화, 권영우, 하종현, 정창섭의 주요 작품 70여 점을 아우르는 이 전시는 한국 단색화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선보이는 장이었다. 전시가 열리기 몇 해 전부터 단색화를 재조명하는 흐름은 있었지만, 세계인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린 결정적 계기는 바로 이 특별전이었다.

〈단색화〉전이 한국 미술의 특정 사조에 주목하게 했다면, 2021년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국가 기관에 기증한 2만3천여 점의 국내외 미술품,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은 한국 근현대 미술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그중 1천4백여 점을 기증받은 국립현대미술관(MMCA)이 같은 해 7월 (2021. 7. 21~2022. 6. 6)을 서울에서 개최한 것. 가로 5m가 넘는 김환기의 대작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부터 이중섭의 ‘황소’(1950년대), 이성자의 ‘천 년의 고가’(1961) 등 57점의 명작을 한자리에 모은 이 전시는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전시 기간을 두 차례나 연장하기도 했다. 특히 팬데믹으로 시간당 30명씩으로 입장을 제한했음에도 총 24만8천7백여 명의 관람객을 동원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럼에도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 근현대 거장에 집중된 관심’이라는 키워드를 다시 꺼내 든 이유는, 국내 일부 주요 미술관의 행보가 눈에 띄게 적극적이어서다.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로는 서울시립미술관(이하 SeMA) 서소문본관에서 열리는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2026. 5. 19~10. 25)가 있다. SeMA가 올해부터 새롭게 시작한 전시 트랙인 ‘한국 근대 거장전’의 일환으로 개최되는 첫 번째 전시다. 새 전시 트랙의 배경에 대해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한국 미술사의 정립과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성과를 이룬 근대 작가들을 재조명하기 위함”이라며 “데이비드 호크니, 에드워드 호퍼 등 해외 거장의 작품을 소개한 해외 걸작전 트랙과 균형을 이루며 한국 근대미술의 성취를 오늘의 관점에서 폭넓게 향유하는 기회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실제로 첫 전시로 유영국 회고전을 택했다는 점은 이러한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1930년대 아방가르드 실험부터 1999년 절필작에 이르기까지 유영국이 60여 년간 구축한 예술 세계를 총망라한다. 작가의 삶과 작업을 연대기적으로 조명하는 아카이브를 시작으로 유화, 부조, 사진, 드로잉 등 1백70여 점의 작품과 자료를 선보이며, BTS RM의 소장품과 15점의 미공개작도 함께 공개했다. 여기에 9월 프리즈 서울 × 서울아트위크 기간에는 서울디자인재단과 협업해 DDP 외벽에 작품을 투사하는 ‘서울라이트 DDP’를 진행하는 등 미술관을 넘어 도시 공간으로 전시 경험을 확장할 계획이다.


2


강원도 원주의 산자락에 아름다운 건축과 풍경을 품은 뮤지엄 SAN 역시 이배의 대규모 개인전 〈En attendant: 기다리며〉(2026. 4. 7~12. 6)를 진행 중이다. 개관 이래 최초의 한국 작가 개인전으로, 본관 입구부터 청조갤러리 로비·1·2·3관, 야외에 위치한 ‘무의 공간’까지, 전관에 걸쳐 전시가 펼쳐진다. 미술관의 공간적 이점을 살린 초대형 설치작이 특히 눈에 띄는데, 입구에 설치된 높이 8m, 폭 5m, 무게 7톤에 달하는 작품 ‘불로부터(Issu du feu)’는 엄청난 스케일로 관람객을 압도한다.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무의 공간에 설치된 약 10m 규모의 브론즈 작업 ‘붓질(Brushstroke)’ 6점은 한국적인 조형 언어와 자연이 맞물리는 풍경을 빚어내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현대미술의 계절인 가을을 앞두고 주요 미술관들은 한국 작가를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를 잇따라 선보인다. 오는 8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는 천으로 만든 집 작업으로 유명한 설치미술가 서도호의 개인전이 열린다. 초기작부터 주요 작품,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그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전시다. 리움미술관에서는 9월 구정아 개인전을 연다. 2024년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한 구정아의 국내 최대 규모 전시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해외 거장 전시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대규모 연출이 이제 한국 작가 전시에서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된 데는, 한국 근현대 미술을 향한 관심과 신뢰가 높아졌다는 배경이 작용한다. 동시에 글로벌 미술계에서 한국 작가들의 위치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전략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한편 블록버스터 중심의 흐름 속에서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전시가 상대적으로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양상도 나타난다.


3


오감으로 체험하는 참여형 전시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요즘의 소비 트렌드는 전시장 풍경도 바꾸어놓았다.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고 몰입하는 공간 구성의 미학이 점점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형형색색의 띠가 전시장 바닥을 가득 뒤덮은 공간을 걷거나, 그 한가운데 서서 찍은 전시 인증 사진이 SNS에 심심치 않게 올라왔다. 이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린 마크 브래드포드의 국내 첫 개인전 〈Mark Bradford: Keep Walking〉(2025. 8. 1~2026. 3. 1) 초입을 장식한 설치 작품 ‘떠오르다(Float)’다. 작가가 거리에서 수집한 전단과 광고 포스터, 신문지 등 도시의 부산물을 긴 띠 형태로 재단해 노끈으로 이어 붙인 뒤 전시장 바닥 전체를 덮도록 설치한 작품이다. 관람객은 그 위를 직접 걸을 수 있으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표면이 미세하게 변형되는 과정 또한 작품의 일부가 된다. 이로써 관람객은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움직임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참여자가 된다. 현재 리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그룹전 〈다른 공간 안으로: 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환경 1956–1976〉(2026. 5. 5~11.29)은 관람객의 참여를 한층 더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2023년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Haus der Kunst)에서 기획돼 세계를 순회 중인 이 전시는 미술사에서 오랫동안 누락되어온 여성 작가들의 선구적 환경 작업을 재조명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관람객은 낯선 상황과 마주한다. 이제 막 돌을 지난 아기의 키만큼 지면에서 붕 떠 있는 빨간 비닐 구조물은 과연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는 야마자키 츠루코의 ‘빨강(Red)’으로 직접 몸을 낮춰 안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내부에서는 붉은 공간에 잠기는 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고, 외부에서는 안에 들어간 사람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지는 작품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 곳곳에서는 질을 연상시키는 입구와 난소를 암시하는 고무 통로, 자궁을 닮은 중심부를 지나 밧줄과 왜곡 거울로 이루어진 출구를 통과하도록 설계된 작품을 탐험하거나, 136kg의 거위털로 채운 백색 공간에서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감각을 경험하는 등 시종일관 오감을 자극하는 작업을 만나게 된다.

과거 전시 관람의 기본은 작품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눈으로 감상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시는 그 거리를 기꺼이 허문다. ‘보는 미술’에서 ‘체험하는 미술’로, 요즘의 전시는 감상의 문법을 새롭게 쓰고 있다


1
2


작품의 특성을 반영한 감각적인 굿즈


지난 4월 열린 2026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는 나흘간 약 25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다. 종교 박람회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가히 놀랄 만한 수치다. 서울국제불교박람회의 인기는 재작년 무렵부터 주목받았는데, 그 비결 중 하나가 바로 힙한 굿즈다. 많은 이들이 가방에 키 링 하나쯤은 달고 다니는 요즘, 굿즈는 전시의 화제성을 이어가는 또 하나의 콘텐츠가 됐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만 슬쩍 살펴봐도 다들 굿즈 만들기에 진심인 걸 느낄 수 있다. 유영국 회고전의 경우 조선일보 문화사업단과 손잡고 1백50여 종의 굿즈를 선보였다. 텀블러, 에코 백, 키 링 등 굿즈의 정석이라 할 수 있는 아이템은 물론 양말, 암막 양우산, 블록 크레파스 등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해봤어’라는 유행어처럼 없는 게 없다. 물론 모든 미술관과 갤러리가 이토록 굿즈의 물량까지 공들일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수량은 콤팩트하게, 그러나 작가나 작품의 특성을 반영해 특별함을 더하는 전략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뮤지엄 SAN의 〈En attendant: 기다리며〉 굿즈다. 도자기 물잔과 접시, 우드 트레이와 젓가락, 쿠션, 인센스 등 총 6종을 출시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인센스다. “숯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는 동시에 나무와 불의 속성을 모두 품고 있는 숯의 본질을 은유적으로 담았다”는 노은실 뮤지엄 SAN 학예교육실장의 말처럼 작가의 작업 세계를 일상의 감각으로 옮겨놓은 아이템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진행 중인 〈MMCA 해외 명작: 수련과 샹들리에〉(2025. 10. 2~2027. 1. 3)의 굿즈인 리추얼 스프레이 역시 같은 맥락이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에서 영감받은 ‘모네’는 연꽃 오일의 맑은 향에 시트러스의 싱그러움을 더했으며, 르누아르의 ‘노란 모자에 빨간 치마를 입은 앙드레(독서)’에서 착안한 ‘르누아르’는 장미를 중심으로 아이리스와 바이올렛이 어우러진 플로럴 향을 담아 작품의 인상을 공감각적으로 표현했다.


1
2


오늘날 전시는 예술과 라이프스타일, 소비문화의 접점에 서 있다. 관람객들은 작품을 감상하는 동시에 공간을 체험하고, 굿즈를 구매하며, 자신의 취향을 기록한다. 한국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과 참여형 전시, 감각적인 굿즈의 인기는 모두 전시가 종합적인 문화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시는 때로 하나의 브랜드처럼 소비되기도 한다. 작품 자체보다 인증 사진이나 굿즈가 더 큰 화제가 되는 현상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결국 전시의 가치는 화제성의 크기가 아니라, 그 경험이 관람객에게 남기는 질문과 기억의 밀도에 의해 결정된다.


3





Art+Culture ’26 Summer Special →

01. Art + Culture 보러 가기
02. Female Artists in Focus_확장된 지도: 한국 현대미술의 실험과 도약 보러 가기
03. 개관 10주년을 맞이한 롯데콘서트홀_연결의 항해, 새로운 10년 보러 가기
04. 세 가지 키워드로 보는 전시 트렌드_지금 우리는 어떤 전시에 열광하는가 보러 가기
05.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_마이너는 정말 마이너인가? 보러 가기
06. 동시대의 질문에 답하는 세 전시_AI 시대 속 ‘인간다움’에 대해 묻다 보러 가기
07. Exhibition in Focus 보러 가기
08. Remember the Exhibition 보러 가기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