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와 상하이를 잇는 사유와 울림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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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02, 2026

글 고성연(상하이·베니스 현지 취재)

월리스 찬(Wallace Chan) 〈Vessels of Other Worlds〉


지난 7월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베니스에서 월리스 찬(Wallace Chan)의 작품을 만난 것은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게 아니었다. 지난 5월 초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에 맞춰 전시 초청을 받았지만 당시에는 방문하지 못했고, 여름에 유럽 출장 중 이 고혹적인 물의 도시를 찾았다. 전시 장소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은 채 산 마르코 광장을 지나던 중, 은근히 시선을 붙잡는 교회 문 앞에서 자석에 끌리듯 발걸음을 멈췄다. 바로 월리스 찬의 〈Vessels of Other Worlds〉(5월 8일~10월 18일)가 개최되고 있는 작은 교회, 산타 마리아 델라 피에타였다. 고색창연한 종교적 공간 안에서 먼저 시야에 들어온 그의 티타늄 작업은 신비로웠다. 하나의 조각 안에서 여러 얼굴이 겹쳐 보이고, 티타늄 표면의 오묘한 색과 반사가 시선과 위치에 따라 달라지면서 낯설고도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오래된 종교적 공간과 현대적인 조각이 빚어내는 색다른 매혹이었다. 그리고 전시장 안으로 끝까지 들어가자 3개의 작은 화면에서는 또 다른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 달 남짓의 시차를 두고 이어진 이원 전시의 설치를 막 마친 롱 뮤지엄(웨스트 번드)의 실시간 모습이었다. 베니스에서 마주한 그의 세계가 시공간을 달리한 상하이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 이 설렘을 안고 몇 주 뒤 상하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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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코 광장 한복판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작은 교회 안으로 들어섰을 때, 인상적이었던 건 오래된 종교 공간이라는 장소성이었다. 하지만 월리스 찬(b. 1956)은 특정 종교의 상징을 재현하기보다 탄생과 죽음, 변화와 재생, 인간과 우주 같은 근원적 질문을 서로 다른 문화의 언어를 통해 풀어낸다. 불교와 도교, 기독교적 이미지가 그의 작업에서 하나의 종교적 선언으로 수렴하기보다, 인간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온 서로 다른 사유의 방식으로 만나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의 전통을 바라보는 자신의 태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문화마다 같은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서로 다른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태어났는가? 고통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인간의 내면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가?”로 이어진다. 그에게 불교 철학이나 기독교적 이미지, 서양의 예술 전통은 장식적 도상이나 특정한 종교적 메시지가 아니다. 그는 그것들을 ‘인간이 미지의 세계에 다가가기 위해 만들어온 언어’라고 말한다. 성장하면서 다양한 영적 세계를 접한 그는 종교 역시 자신에게는 하나의 철학이라고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종교의 이름이나 분류가 아니라, 그 이름이 어떤 질문을 열어주는가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이번 이원 전시의 제목인〈Vessels of Other Worlds〉에도 이어진다. ‘베슬(vessel)’, 즉 용기는 무엇인가를 담는 그릇이지만, 그에게 그것은 고정된 무엇인가를 담아두는 도구가 아니다. “베슬은 열려 있는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비어 있음은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상하이에서 3개의 거대한 베슬을 마주했을 때 더욱 구체적인 의미를 띠게 된다. 하지만 그 전에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처럼 대형 조각을 만들어온 작가의 시작점은 의외로 작았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젬스톤(gemstone), 그리고 그 안에 새겨 넣은 하나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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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스 찬이 다루는 작업도, 전시 공간도 크기는 달라지지만,
하나의 세계 안에 또 다른 세계가 들어 있고,
하나의 형상이 보는 위치와 관점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열릴 수 있다는 생각은 그대로 이어진다.


하나의 얼굴에서 여러 개의 얼굴로
월리스 찬의 출발점을 이해하려면 1970년대 홍콩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넉넉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그는 여러 일을 전전하다 1973년, 열여섯 살에 보석 조각 공방의 견습생이 됐다. 당시 홍콩에서는 중국 공예품의 서구 수출이 활기를 띠었지만, 반복적인 작업에 답답함을 느낀 그는 9개월 만에 공방을 나왔다. 부모에게 1천 홍콩달러를 빌려 조각 기계와 공작석 두 점을 마련하고, 가족이 살던 건물의 비상계단에 접이식 테이블을 놓고 자신의 작업을 시작했다.

다른 예술 형식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사진 전시에서 다중 노출로 하나의 얼굴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이미지를 보고 그 원리를 보석 조각에 적용할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그러다가 투명한 젬스톤 뒤쪽에 점 하나를 새기면 앞에서는 5개의 점으로 보이는 현상을 발견했다. 하나의 조각과 4개의 반사가 만들어낸 이미지였다. 그가 ‘역으로 생각해 여러 개의 반사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라고 설명하는 ‘월리스 컷(Wallace Cut)’의 탄생이었다(1987년). 그는 이 첫 발명을 ‘아무것도 없는 데서 모든 것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진정으로 깨달은 순간’이라고 회고한다.

그때부터 월리스 찬에게 재료는 단순한 작업 수단을 넘어선다. 젬스톤 조각에서 시작한 탐구는 주얼리와 조각, 설치로 확장됐고, 그 과정에서 티타늄, 도자기, 철, 흑요석 등 다양한 재료를 만났다. 그는 이를 한 재료를 버리고 다른 재료로 옮겨간 과정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각각의 재료가 다른 문을 열어준 긴 여정에 가깝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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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를 정복하는 대신, 함께 춤추다
“젬스톤은 저에게 빛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주얼리의 세계는 친밀함을, 티타늄은 시간과 규모를 알려줬죠. 도자기는 변화를 가르쳐줬고요.” 특히 티타늄은 그의 조각 세계를 결정적으로 확장한 재료다. 2000년 티타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는 수년간 깊이 있는 연구와 실험을 거듭했다. 강하고 가벼우며 부식에 강한 이 금속은 그에게 시간과 영속성에 대한 사유를 가능하게 했을 뿐 아니라, 기존의 조각 재료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색과 빛, 규모와 구조를 탐구할 수 있는 강력한 조형적 수단이 됐다.

그러나 그는 티타늄을 ‘정복’한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이해하고, 함께 작업하며, 궁극적으로 리듬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티타늄은 강하고 완고한 금속이지만, 그 저항을 억누르는 대신 성질을 이해하고 함께 작업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에게 재료는 단순히 작품을 구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시간과 가능성을 지닌 협업의 대상이다.

티타늄과 철의 대비 역시 재료에 대한 그의 사유를 보여준다. 가볍고 강한 티타늄과 무겁고 부식되는 철은 서로 다른 힘의 관계를 이루며, 재료 자체가 시간과 변화, 영속성과 소멸을 이야기하는 언어가 된다. 특히 티타늄은 그가 말하듯 ‘영원에 가장 가까운’ 재료로서, 지상의 물질성과 초월적 시간성을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티타늄을 만나면서 그의 작업은 주얼리의 섬세한 규모를 넘어 조각과 설치로 확장되었다. 그 여정은 베니스에서 선보인 ‘Titans’(2021), ‘Totem’(2022), ‘Transcendence’(2024)로 이어졌다. 세 전시에서 함께한 큐레이터 제임스 퍼트넘과의 협업은 월리스 찬의 작업을 하이 주얼리의 영역 너머 국제 미술계에 각인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그 협업은 월리스 찬이 70세를 맞이한 것을 기념해 진행되는 이번 베니스·상하이 이원 전시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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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서, 작품 안으로 들어가다
롱 뮤지엄 웨스트 번드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하이 전시(7월 18일~10월 25일)에서는 그 확장의 시간을 관람객의 온 감각으로, 동선을 따라 체험할 수 있다. 작품의 크기와 공간의 깊이, 빛과 그림자, 그리고 작품 사이를 걸어가는 움직임까지 전시의 일부가 된다. 입구에서 얼굴과 인체를 떠올리게 하는 조각들을 지나면 ‘Titans’, ‘Totem’, ‘Transcendence’로 이어지는 이른바 ‘베니스 삼부작’ 전시와 마주하게 된다. 월리스 찬이 베니스를 무대로 수년에 걸쳐 선보인 대형 작업을 한 전시에서 제대로 접할 수 있는 기회다. 이어 곡선미가 돋보이는 어두운 통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 공간이 점차 넓어지고, 마침내 3개의 거대한 베슬 ‘Birth’, ‘Growth’, ‘Rebirth’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큐레이터 제임스 퍼트넘이 처음부터 의도한 것도 이러한 여정이었다. 베니스에서 작품을 하나의 장면으로 바라봤다면, 상하이에서는 작품 사이를 직접 통과하며 그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셈이다.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세 ‘베슬’ 작업은 갈수록 규모가 커진다. 가이디드 투어에서 들은 설명에 따르면 마지막 작품 ‘Rebirth’는 처음에는 10m 높이로 계획됐지만, 결국 11m까지 확장됐다. 그리고 이를 지나면 전시는 다시 작은 세계로 돌아간다. 퍼트넘이 설명하듯 이 지점에서는 태아를 연상시키는 작은 조각과 정교한 주얼리 섹션이 등장하면서 시선의 크기가 다시 전환된다. 이곳에는 롱 뮤지엄을 설립한 류이첸·왕웨이 부부의 컬렉션에 포함된 작품도 함께 자리한다. 대형 설치의 클라이맥스 뒤에 미세한 세계를 배치함으로써, 서로 다른 규모의 작업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퍼트넘은 이 지점에서 커다란 조각과 작은 주얼리가 서로 별개의 작업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주얼리는 ‘미니어처 조각’처럼 읽을 수 있으며, 매크로코즘과 마이크로코즘을 오가는 작가의 철학도 이 동선 속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월리스 찬이 다루는 작업도, 전시 공간도 크기는 달라지지만, 하나의 세계 안에 또 다른 세계가 들어 있고, 하나의 형상이 보는 위치와 관점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열릴 수 있다는 생각은 그대로 이어진다. 작은 보석을 다루던 손이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게 된 것은 규모의 확장이라기보다, 시선과 사유의 확장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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