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의 한국 미술을 반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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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 2016

글 이소영

세계 미술의 중심, 뉴욕에서도 빛나는 존재인 리먼 머핀 갤러리의 레이철 리먼(Rachel Lehmann) 대표가 한국 미술을 ‘편애’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13년 이불 작가 개인전으로 리먼 머핀 홍콩 갤러리의 개관을 알렸으며, 지난 3월 아트 바젤 홍콩에서도 이불과 서도호 작가의 작품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국 현대미술에 애정이 깊은 레이철 대표에게 우리나라 미술계의 현주소와 그가 기대하는 방향성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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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이스트 햄프턴에서 뉴욕으로 갤러리를 이전하며 본격적인 갤러리스트의 행보를 선언한 레이철 리먼 대표. 스타 작가보다 신진 작가에 대한 관심이 컸고, 서도호의 대학 졸업 전시를 주목해야 한다는 소문을 들으면서 처음 한국 작가에게 관심을 가졌다. 레이철 대표는 서도호의 아틀리에와 한국 집을 방문했고, 2000년 리먼 머핀 갤러리(Lehmann Maupin Gallery) 뉴욕에서 개인전을 제안하며 인연을 확장했다.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한 서도호는 이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리먼 머핀 갤러리를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서게 됐다. “리먼 머핀 갤러리 홍콩의 개관전을 이불 작가 전시로 정한 건 뉴욕 갤러리 철학의 연장입니다. 새로운 아시아 미술과 하향 평가되는 여성 작가에 대한 오랜 관심이 이불 작가의 개관전으로 발현된 거죠.” 서도호와 이불 작가에서 시작된 한국 미술에 대한 그의 관심은 폭넓게 확대되고 있다. 이우환, 단색화 작가 등과 같은 한국의 미니멀리즘에도 조예가 깊은데, 여러 작가의 작품을 접하면서 자연스레 또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궁금해져 한국을 자주 방문하고 있다. 이제 리먼 머핀이 창립 20주년을 넘어설 만큼 성장했고, 서도호와 이불 작가와 오랫동안 함께 일해오다 보니 그들의 이전 세대는 어떤 작품을 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이 지긋한 작가들의 아틀리에를 하나둘 방문했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한국의 역사와 현대미술은 서구 사회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회화를 전공한 서도호의 추상 작품이 한국 역사와 깊이 관련돼 있음을 발견했고, 김기린의 1960년대 모노크롬 작품에서 이불과의 연결 고리를 찾았어요. 서세옥의 작품 세계가 아들인 서도호에게 영향을 준 건 당연하니, 그의 작품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고요.”
포스트 단색화를 찾아 헤맬 필요는 없다
이외에도 아직까지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그가 조만간 리먼 머핀 갤러리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싶은 한국 작가가 여러 명이다. 하지만 이는 최근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단색화의 인기와 큰 관련은 없다고 했다.
“갤러리스트로서 항상 강렬함에 매혹돼왔습니다. 단색화는 시각적 강렬함과는 상관이 없지만 중요한 사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한국에서 포스트 단색화가 될 만한 대안을 추구해야 된다고 보지는 않아요. 한국인들은 단색화 이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좋은 작업을 하는 미술가가 많은데 왜 그들을 굳이 하나의 사조에 묶어야 하나요? 요제프 보이스와 길버트 & 조지처럼 혼자서도 강력한 힘을 가진 미술가들이 있잖아요.”
물론 단색화는 개개인의 작품도 좋지만 그룹으로 선보이다 보니 더욱 힘을 갖게 된 건 사실이다. 그는 단색화가 서양의 미니멀리즘, 추상화와 연결성을 갖춰 이해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단색화라기보다는 한국의 추상미술 자체에 큰 애정을 갖고 있고, 이런 호기심은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됐다. 그는 단색화의 성공에 취해 맹목적으로 포스트 단색화를 추구한다면 그와 똑같은 성공은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미술 시장이야 부침을 겪기 마련이지만 좋은 작품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강조했다. 2008년 무렵 세계경제가 크게 흔들렸을 때, 미술 시장은 힘들었지만 대가들의 작품은 여전히 인기가 높았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그렇다면 어떤 작품이 인정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역사적 토대에서 창조해낸 현대적 작품 중, 미래에까지 그 중요성이 전달될 만한 작품에 눈이 가죠. 작품의 과거, 현재, 미래의 연결성도 중요하고, 작가의 메시지가 호기심을 자극하되 깊이 들여다봐도 한결같이 흥미로워야 해요. 30년 뒤에도 여전히 관심이 갈 만한 메시지여야 한다는 얘기죠.” 그는 또 복잡다단한 요즘에는 한 가지 장르보다는 회화, 비디오, 설치 등 여러 매체를 활용하는 역량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미술관, 갤러리, 컬렉터의 유기적인 삼각 구도
이런 맥락에서 레이철 대표는 한국 미술이 ‘최고 수준’이라고 격찬한다. 다만 한국 미술계는 생태계의 중추인 미술관과의 커넥션이 약하다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갤러리, 미술관, 컬렉터의 유기적인 삼각 구도가 아티스트를 든든하게 후원해야만 미술계가 상생하고 발전할 수 있는데, 한국은 특히 미술관의 후원이 부족합니다. 미술관은 가장 신뢰를 주는 존재예요. 체계적인 전시 프로그램으로 컬렉터에게 믿음을 주고, 대중에게는 교육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리먼 머핀 갤러리는 미술관 전시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며 작가와 더불어 성장하려고 노력한다. 미술관과 컬렉터가 아티스트를 적극 후원하고, 갤러리는 미술관 전시를 도와 아티스트를 한층 성장시켜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갤러리는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긴 하지만, 이런 상관관계를 잘 알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원래 홍콩에 갤러리를 열기 전에 서울에 갤러리를 내고 싶어 탐색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하지만 영어가 잘 통하지 않기 때문에 기회를 미뤘다. “내년에는 김기린과 서세옥 화백의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에요.” 현재 뉴욕 첼시와 크리스티 스트리트에 2개의 갤러리, 홍콩에 1개의 갤러리를 운영하는 리먼 머핀은 2018년 뉴욕에 네 번째 갤러리를 열 예정이다. “서울에 있는 편집매장 분더샵의 건축가이기도 한 피터 마리노가 설계를 맡았어요. 리먼 머핀 4호점이 어떤 새로운 특징을 띠게 될지는 미정이에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좀 더 고민해보려고요.” 그가 이끄는 네 번째 갤러리의 개관전 주인공이 누구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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