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에 작은 설렘을 느끼는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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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 2015

글 소육영(서울옥션 미술품경매팀 총괄)

현대미술은 어렵고, 작품은 고가다? 하지만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현대미술은 순수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매력적인 장르이며, 아트 컬렉터도 큰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술에 관심은 있지만 아직은 입문이 망설여지는 이들을 위한 친절한 가이드.



47억2천만원! 지난 10월 홍콩에서 열린 ‘제16회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낙찰된 김환기 작가의 작품 가격이다. 이로써 기존의 국내 작가 낙찰 최고가인 박수근 작가의 45억2천만원의 기록이 깨졌다. 뉴스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몇 가지로 나뉠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비해 미술품 가격이 낮은 국내 작가의 작품가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간 것을 환영하는 반응도 있을 것이고, ‘도대체 어떤 작가, 어떤 작품이길래 한 점에 47억2천만원이나 할까?’라는 호기심 어린 반응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후자의 경우에 해당할 테고, 그 순간 많은 사람들이 미술품 소장의 꿈에서 한 걸음 물러나려 한다. 하지만 미술품 소장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고, 무조건 비싼 작품만 노릴 필요도 없다.

현대미술은 견물생심이다

“오랜만에 미술관에 들렀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네.” 어쩌면 이것이 현대미술에 대한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근대 이전의 미술 작품은 사실의 묘사가 주를 이뤘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화가가 되는 시대였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다르다. 작가의 행위에 대한 주목, 작가의 사고 혹은 의도 등 먼저 이해해야 할 사항이 산재한다. 그래서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내가 작가가 아닌 이상 작가의 창작 의도를 100% 알 수 없으니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나 도록을 찾아볼 것을 권하고 싶다. 미술에 관심이 많은 블로거들의 콘텐츠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작가 이름만 검색해봐도 작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작품에 대한 설명, 개인적 평가까지 읽어보며 객관적 정보와 주관적 정보를 넘나들다 보면 나와 작가의 사이를 좁힐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작품을 많이 봐야 비로소 눈이 뜨인다.
한국 미술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고 싶다면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국공립 미술관을 추천한다. 상설 전시와 기획 전시를 통해 선보이는 작품을 통해 한국 미술의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다. 좀 더 다채로운 작품을 보고 싶다면 간송미술관이나 리움 같은 사립 미술관도 좋다. 크고 작은 갤러리가 모여 있는 삼청동이나 청담동도 좋은 볼거리가 풍부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자주 접하다 보면 어느덧 갖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힌다. 사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장가와 아트 딜러도 그 시작은 모두 한 점의 그림에서 비롯됐다. 생애 첫 소장품이 꼭 비쌀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 훨씬 좋다. 이를테면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며 작품을 골라 내 생애 첫 소장품으로 삼고, 아이가 크는 동안 아이의 창의력을 키워주는 데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경매 회사의 프리뷰가 매력적인 이유

미술품은 주로 갤러리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갤러리는 작가와 계약을 맺고 작가와 정한 가격 기준에 맞춰 판매가를 결정한다. 작품을 처음 선보인다는 의미에서 1차 시장이라 불린다. 개인이 소장하던 작품이 다시 시장에 나오는 경우라면 대개 경매 시장을 통해 거래된다. 경매 시장이 2차 시장인 셈이다. 미술품 경매는 철저하게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영역이다. 공산품과는 달리 수량이 한정된 미술품의 특성상 가장 합리적인 거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서울옥션의 경우, 연간 4회의 메인 경매와 3회의 해외 경매(홍콩), 그리고 다수의 온라인 경매를 실시한다.
경매 회사는 경매 전 ‘프리뷰’를 통해 작품을 전시하는데, 누구에게나 열린 전시회나 다름없어 추천할 만하다. 구매 의사가 없더라도 방문해 안목을 높이는 데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차 시장이다 보니 트렌드에 강해 요즘 ‘핫하다’는 작가들을 확인할 수 있으며, 실질적으로 경매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작품의 수준이 높아프리뷰 방문이 큰 미술관 방문과 맞먹는 효과를 낸다. 게다가 분야별 스페셜리스트들이 작품에 대해 설명해주니 족집게 과외나 다름이 없다. 최근 온라인 거래의 붐을 등에 업고 미술품 경매의 저변 확대를 위해 세계적으로 미술품 온라인 경매가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 경매에 출품된 중저가 작품도 노려볼 만하다. 작가의 작품을 한정된 에디션을 가지고 디지털 판화로 제작해 판매하는 브랜드 ‘프린트베이커리’가 그 예라 할 수 있다.

나도 미술품에 투자해볼까?

‘아트 테크’라는 말이 있다. 미술품을 칭하는 ‘아트’와 재테크의 ‘테크’를 조합해 만든 단어다. 미술품을 감상의 대상이 아닌 투자의 대상으로 인식하면서 생겨난 신조어다. 최근 단색화의 유행에 힘입어 투자 성공 사례로 박서보의 작품이 자주 언급된다. 박서보의 작품 중 ‘묘법 № 3-82’는 지난 5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7억25만원에 팔리면서 그의 작품 중 경매 최고가 낙찰을 기록했다. 이 작품은 2년 전인 2013년 가을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6천4백만원에 낙찰된 작품인데, 2년 새 11배 이상 가격이 상승했다. 작품 소장자의 단순 수익률이 약 1,000%인 셈이다.
실제로 미술품 투자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투자자가 많다. 해외는 미술 시장의 역사와 미술품 투자의 인식도 깊은 데다가, 그 단위와 규모도 무척 커서 미술품 투자가 활성화돼 있다. 미술 교과서에서 보던 피카소의 작품 ‘알제리의 여인들’이 올해 1억7천9백만달러(한화 약 2천억원)에 거래돼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사실을 보더라도 우리나라 미술 시장과의 격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단지 미술품을 감상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소장도 하면서 한 발짝 더 나아가 투자하려면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언젠가 투자의 경지에 이를 미래의 컬렉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바는 ‘반드시 투자는 여유 자금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술품은 최고의 현물 투자처지만 주식이나 채권 등에 비해 환금성이 떨어진다. 이 점만 유의한다면 미술은 우리의 삶에 작은 설렘과 윤기를 더해줄 수 있을 것이다. 정신적으로, 또 영민함과 운을 겸비했다면 물질적으로도.



초보 컬렉터가 작품을 구매할 때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


첫째, ‘내가 좋아해야’ 한다. 미술품은 장르가 다양하고 주제나 표현법에 따라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처음 구매할 때 범하는 오류는 남의 권유에 따라 작품을 선정하는 것이다. 내 취향과 다른 작품을 구매하면 작품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곧 싫증이 나고 집에 걸어놓고 즐기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처분할 기회만 노리게 된다.



둘째, 예산 규모를 명확히 하라. 처음 작품을 구매할 때는 보통 본인의 연 수익의 10% 이하, 혹은 5백만원 이하의 작품을 고를 것을 권한다. 비교적 가격이 낮은 판화 작품이나 사진 같은 멀티플 작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 같은 작가의 비슷해 보이는 작품이라도 가격을 꼼꼼히 체크하라.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제작 시기나 재질, 그리고 주제에 따라 가격이 다를 수 있으니 그 점을 꼭 확인한다.



넷째, 작품의 현재 ‘외모’도 따져야 한다. 작품의 컨디션도 중요한 포인트다. 아무리 뛰어난 수작이라 해도 작품 상태가 좋지 않으면 나의 첫 번째 소장작에서 탈락시키자.


◁ © Christie’s Images LTD,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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