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식 멋 내기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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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3, 2020

글 김동현(런던 새빌 로의 한국인 테일러) | edited by 장라윤

우리는 패션을 통해 스스로를 뽐내곤 한다. 물론 정해진 공식은 없다.
뚜렷한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영국 사람들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멋을 표출하고 있을까.



섬나라의 우울하고 음침한 시간이 지나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시계의 시침을 1시간 늦추는 습관적인 행동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흐릿한 날씨에 오다 말다 하는 부슬비가 여전하다. 이 도시에서 계절의 변화를 맞이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나에겐 생소하다. 옷을 알기 위해 어떤 사명감으로부터 비롯된, 그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한 것이 오히려 내가 그들 무리에 온전히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살아왔던 고향과 살아가는 타향을 비교하며 무던히 애쓸수록 결국은 가장자리를 서성이게 되는 것은 별수 없는 운명인가 보다. 하지만 그동안 여기에서 이들의 옷 입는 미학을 결정하는 몇 가지 특성과 습관을 발견한 것은 지루한 일상의 보상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영국인들의 멋 내기와 그 본질을 단지 몇 글자로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들과 부대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꾸준한 관찰을 통해 그나마 작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으니까. 어느 날, 중년의 신사가 우산과 서류 가방을 들고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무언가 생각난 듯 잠시 멈춰 서서 안주머니에서 펜을 꺼냈고, 메모를 하기 위해 잡고 있던 우산 손잡이를 재킷 앞주머니에 걸친 뒤 몇 자를 휘갈기곤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그 순간 옷과 소품으로 멋을 낼 수 있는 전형적 방식 그 이상의 어떤 ‘분위기’를 느낀 것 같다. 며칠 뒤엔 기차역 대합실에서 한 여인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데, 열차 도착이 지연되자 지루함을 잊기 위해 두툼한 코트 주머니에서 책을 꺼내 읽는 모습에서였다. 옷을 잘 갖춰 입은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움직임’에서 아름다움이 느껴진 것이다. 그들에게서 받은 영감은 옷을 활용하는 방식과 태도였다. 다시 표현하자면, 옷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내적 세계라고 할까. 소재와 색상, 그리고 실루엣의 조합으로 멋 내기의 첫 단추를 채우는 우리가 그것을 입고 살아가는 방식에서 꾸밈 이상의 것을 표출하게 된다는 사실은 더없이 소중한 발견이었다.


영국식 옷 입기에서 나타나는 그들의 멋은 아마도 꾸준히 지탱해온 전통에서 생겨난 것 같다. 오래전부터 의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생활해온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보며 자란, 몸에 밴 유전의 소산이라고 할까. 군복에서 시작해 스포츠나 사냥, 뱃놀이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언제나 상황에 맞춰 특정한 복장과 규칙을 제시해왔고, 거부감 없이 그것을 따르는 국민성 덕분에 영국인만의 멋은 단단하게 자리를 잡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영국인의 조상인 게르만족의 특성 중에는 원칙과 합리주의, 수치화, 문서화, 그리고 규범화가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시스템을 잘 만든다는 뜻이다. 양복 재단법에서도 그 역량은 명백히 드러나는데, 이들은 그 기준 안에서 영국적인가 아닌가를 판별한다. 영국인들은 인치(inch)로 이러한 조형을 수치화하는 데 안간힘을 써왔다. 모든 패턴 보정은 1/8~7/8인치의 치밀한 계산 안에서 움직여야 했고, 첫 패턴에서 그 정도 분량을 남겨두는 것이 다음에 발생할 예기치 않은 오류를 합리적으로 해결해나가는 예방책이었다. 패턴과 메이킹 모두 수치화, 정형화된 프로토타입이 있으며, 그것에서 벗어날 때 이단이 되고, 영국성(Enghlishness)과 멀어지는 대륙 또는 반도의 의복으로 분류되었다. 생각해보면 브리치스에 왜 ‘플러스 투’나 ‘플러스 포’라는 이름(무릎 밑으로 2인치, 4인치 내려온 바지라는 뜻이다)이 붙었는지 이해가 간다. 단순히 길이 조절뿐 아니라 주머니의 위치와 경사, 피크트 라펠의 모양 모두 그 전통적인 수치를 따른 원형이 있고, 상황에 맞게 변주한다. 이것이 원칙을 고수하는 영국식 옷이다. 같은 게르만 인종인 독일도 이 성향을 십분 활용한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독일은 군복으로 수트가 국제화되기 전까지 유럽 대륙의 남성 복식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 휴고보스와 에스카다를 비롯한 독일의 깔끔하고 반듯한 수트는 게르만 민족 특유의 칼 같은 재단법을 토대로 한다. 아쉽게도 지금의 독일은 남성 패션에서 영국과 이탈리아, 프랑스에 비해 두드러지진 않지만, 그 기초가 되는 제복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프랑스 양복은 영국과 사촌 간 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다. 어원이 같은 영국의 ‘gentlemen’과 프랑스의 ‘gentilhomme’. 하지만 두 국가에서 이 단어로 표현하는 이상적 남성성은 확실히 다르다. 그런 이유로 당연히 양복으로 멋을 내고자 하는 특성 또한 다르다. 영국에 ‘비스포크’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오트 쿠튀르’가 있다. 프랑스인들은 양복을 그 원형인 유니폼의 틀에 가두길 싫어했다. 특유의 섬세함과 상상력으로 프랑스식 재킷을 만들었는데, 기존의 노치트 칼라 각도를 위쪽으로 더 높여 파리지엔 칼라를 만들고, 남성 양복의 재단도 곡선을 활용해 유려하게 몸을 감싸도록 했다. 르코르뷔지에가 오래된 양복점 ‘ARNYS’에 주문한 포레스티어(forestie`re)는 프랑스식 미감을 잘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는 수트 재킷과 다르게 매일 입을 수 있고, 입었을 때 편안하고 실용적인 재킷을 양복점에 주문했는데, ARNYS는 그의 의견을 반영해 만다린 칼라를 사용하고 소매 모양도 항상 제도를 해야 하는 건축가의 생활 양식에 맞게 팔을 움직이기 쉬운 디자인을 적용했다. 이 재킷은 우아함과 실용성 때문에 장 콕토를 비롯한 문화계 인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한편 이탈리아는 도시마다 그들의 스타일을 다르게 펼치고 있다. 그렇게 흩어진 파편들이 공교롭게도 이탈리아 복식이라는 큰 그림의 아름다운 퍼즐을 완성해왔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이탈리아 옷은 영국에서 태동한 근대적 복식의 토대 위에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그 큰 물결을 받아들였을 때 흐름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스타일로 발전시킨 것이 이탈리아 양복이 자랑할 만한 부분이다. 앞서 말한 국가들이 옷을 통해 질서와 통합을 이야기했다면, 이탈리아는 인간의 다양성을 이야기했다고 정의할 수 있다. 그들에게 처진 어깨와 꺼진 가슴은 패드와 캔버스로 보강해야 할 결점으로 보이지 않았다. 패드를 빼서 어깨는 자연스럽게, 오히려 충분한 여유를 주어 활동성 있게 만들었고, 가벼운 옷을 만들기 위해 두툼한 심지를 모두 빼버렸다. 더 나아가 각기 다른 개인의 체형을 드러내는 실루엣에 집중하기도. 셔츠처럼 소매 솔기를 안쪽으로 꺾어 봉제하는 ‘스팔라 카미치아’나 가슴 주머니(바르카)를 곡선으로 처리하는 그들의 양복에선 특유의 과장과 여유, 그리고 위트를 느낄 수 있다.
독일의 멋은 질서에서 나오고, 프렌치 시크는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무심함에서 나오며, 이탈리아의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는 기교를 습득한 뒤에 나오는 여유와 태연함에서 표출된다. 비슷해 보이는 수트도 이렇듯 각국의 문화적 소양과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미묘하게 갈린다. 영국인의 멋은 독일에 가깝긴 하나, 특정한 공식으로 박제된 획일주의는 아니다. 규칙을 따르되 그것을 아슬아슬 벗어나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순간적으로 피어나는 어떤 것이라고 말하는 게 맞다. 영국에 오면 새빌 로에서는 정신을 집중해서 옷을 입어야 하지만, 그 후부터는 완벽하게 잊어버리고 본인의 애티튜드에 집중하라고 말하고 싶다. 영국식 멋의 본질은 ‘부리는 것’이 아닌 ‘우러나오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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