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20 WINTER SPECIAL] Thought-Provo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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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1, 2020

두 세계가 만날때 Wael Shawky - 글 박소현(큐레이터) | edited by 고성연 || 찰나의 흔적 Gary Hill - 글 박현진(큐레이터) | edited by 고성연

서구권과 비서구권에서 자신만의 시선과 방식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온 작가들의 전시가 열려 주목된다. 아랍 문화권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와엘 샤키(Wael Shawky), 그리고 스스로를 ‘언어 예술가’라고 소개하는 비디오아트의 거장 게리 힐(Gary Hill). 전자가 서정 시인 같은 감성을 품고 있으면서도 날카로운 성찰을 불러일으킨다면, 후자는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하되 위트 섞인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영상 언어의 감성은 다르지만 둘 다 지적이면서 은근히 강렬한 매력이 시선을 고정시키고, 사고의 틀을 흔든다. 두 작가의 전시를 맡은 각각의 큐레이터가 소개한다.


두 세계가 만날 때
Wael Shawky
과연 문이 열릴까 싶은, 안이 보이지 않는 건물.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가면 푸른색 공간이 펼쳐진다. ‘메탈릭’ 톤의 푸른 벽은 영상의 푸르른 빛과 만나 시공간을 흐리는 듯 모호한 공간감을 자아낸다. 나지막한 아랍어 내레이션과 함께 흐르는 이 공간은 외부와 단절된 채 온전히 작가가 만들어낸 ‘사실’과 ‘신화’가 만나는 중간 영역이 된다. 신비한 서정시 같은 영상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역사적 서술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이집트 현대미술 작가 와엘 샤키(Wael Shawky).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지 않은 문화권이 아닐까 싶은 중동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올겨울에는 그를 개인전과 그룹전에서 만날 수 있다. 서울 삼청동에 자리한 갤러리인 바라캇 컨템포러리는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Al Araba Al Madfuna)>를 진행 중이고, 중동 현대미술을 조명하는 서울시립미술관(서소문)의 전시 <고향>에서도 그를 소개하고 있다.
전시 제목과 같은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라는 작품은 작가가 이집트 북부 동명의 마을을 방문했을 당시, 샤먼의 주술로 선대의 보물을 찾아내는 마을 주민들의 발굴에 참여한 경험에서 시작됐다. 그 낯선 경험은 아이의 모습에 성인의 모습을 병치한 몽환적인 영상으로 재탄생한다. 영상에서 나오는 내레이션은 이집트 소설가 모하메드 무스타갑의 <해바라기>라는 단편소설에서 차용했다. 별 쓸모가 없던 ‘해바라기’는 그 씨를 까는 오락적인 요소를 발견하며 제의적 기능과 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마을의 모든 경작물을 대체하게 된다. 결국 모든 농작물과 가축이 사라지며 폐허가 되는 디스토피아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설정이다. 영상과 나레이션은 서로 다른 2개의 이야기로 병치되며 묘한 긴장을 자아낸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작품 ‘카바레 십자군(Cabaret Crusade)’은 와엘 샤키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대표작이다. 아랍의 시선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지만, 작가는 한쪽의 일방적인 시선을 강요하지 않는다. 섬세하게 설정된 마리오네트와 배경으로 진행되는 인형극은 어떤 선입관의 굴레에도 갇히지 않은 채 역사가 갖는 처연함과 고통을 오히려 생생하게 전달한다. 치밀한 조사와 연구를 거쳐 만들어내는 그의 작품은 역사적 사건을 재해석하는 ‘다시 쓰기’이면서, 더 나아가 후대에 누군가의 관점으로 쓰였을 역사의 허구성에 대한 예리한 고발이기도 하다.
두 전시 공간은 작가의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듯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언제나 역사와 신화, 사실과 허구, 진실과 환상,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창작한다. 어떤 것도 사실, 혹은 허구라고 확신할 수 없다. 전시장으로 들어가며 우리도 자연스레 다른 세계를 접하게 된다. 그것은 낯선 아랍의 역사에 대한 것일 수도, 한 마을의 신화적인 이야기 일 수도, 또는 작가의 무의식이 표현된 신비로운 페인팅과 드로잉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우리가 만나보지 않았던 세계와의 접합이고, 그리하여 우리 안에 무지의 영역이던 공간에 빛을 넣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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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흔적
Gary Hill
정조대왕의 흔적이 깃든 화성행궁 옆에 자리한 수원시립미술관은 드물게 사선 형태의 벽을 갖춘 현대적인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다. 전면부는 짙은 색의 커다란 유리창으로 둘러싸여 개방감을 주지만, 밝은 낮에는 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선뜻 다가가기 힘든 인상도 있지만, 일단 내부에 들어서면 온기를 품은 공간 덕에 느낌이 달라진다. 게다가 시원한 유리창을 통해 시야에 들어오는 행궁 광장, 그곳을 거니는 사람들의 풍경이 작은 휴식을 선사한다. 특히 올겨울에는 미디어 아트계에서 남다른 자취를 남겨온 거장 게리 힐(Gary Hill)의 영상과 사운드가 이 공간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다. 오는 3월 8일까지 진행되는 <게리 힐: 찰나의 흔적>은 작가가 1981년부터 2019년까지 이어온 흥미로운 작품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기회다. 영문 전시명 ‘Momentombs’는 moment(찰나), momentum(가속도)과 tomb(무덤)의 합성어.
게리 힐은 백남준에 의해 비디오 아트가 탄생했던 초기인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언어와 신체, 이미지, 공간의 형태 등 다양한 주제로 작업을 해온 작가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신작을 발표하며 세계 무대를 휩쓸고 있는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수원을 찾았다. 1951년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에서 태어난 게리 힐은 초기에는 조각을 했지만 여러 매체를 접하면서 방향을 틀었다. 1970년대 초반부터 사운드를 바탕으로 영상과 텍스트를 활용한 미디어 작품을 발표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1972~73년께 뉴욕에 있던 피플스 비디오 시어터(People’s Video Theater)가 옮겨 와 우드스톡 커뮤니티 비디오(Woodstock Community Video)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는데, 당시 그곳의 디렉터 켄 마시(Ken Marsh)를 만났어요. 그는 저에게 최초의 비디오카메라인 소니 오리지널 포타 팩(Porta-pak)을 보여줬는데, 놀라웠습니다. 그때 저는 비디오라는 매체에서 조각과는 전혀 다른 사유 방식을 경험했어요.” 이후 그는 언어와 이미지, 단어와 발음의 상호성에 치중한 작업, 설치 작품과 관객의 상호작용으로 사유를 확장하며 신작을 선보여왔다. 그런데 요즈음 그는 자신을 규정해온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타이틀마저 스스로 해체하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저는 비디오로 무엇을 표현해볼지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자 매체에는 그런 분류가 적용되지도 않고요.” 작품에서 ‘개념성’을 중시하기에 자신의 작업을 퍼포먼스와 더불어 ‘비매체(non-medium)’ 범위에 넣고 싶어 하는 성향이 다분히 엿보이는 그는 ‘랭귀지 아티스트’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앞으로 많은 작품들이 새로운 기술을 통해 만들어지겠죠. 그렇지만 아주 섬세하고 미묘한 언어유희에서 가장 강렬하고, 본능적인 경험을 얻기도 합니다. 언어야말로 궁극의 ‘기술’이죠.”
평생을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한 매체 속에서 활동해온 작가가 ‘텍스트’를 거듭 강조한다. 겉으로 보이는 매체는 중요하지 않고 그것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어쩌면 가장 단순한 진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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