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20 Summer SPECIAL] 프라다 파운데이션을 이끈 전설의 큐레이터, the artistic journey of Germano Celant

조회수: 2422
7월 01, 2020

글 고성연

누구의 스러짐인들 안타깝지 않을까마는 코로나19의 여파에서 비롯된 한 예술계 거장의 죽음은 이 생태계를 둘러싼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독보적인 존재감을 지닌 문화 예술 플랫폼인 프라다 파운데이션(Fondazione Prada)의 비전을 이끌어온 세계적인 큐레이터이자 미술 사학자, 비평가, 이론가인 제르마노 첼란트(Germano Celant). 1940년생인 그는 이미 한국 나이로는 80대지만 워낙 열정적인 행보를 펼쳐왔기에, 앞으로도 빼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애석하기 짝이 없는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았다. 프라다 재단 홈페이지에는 그를 추모하는 글을 남기는 별도의 공간이 있는데, 영국 현대미술계의 기린아 데이미언 허스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제르마노 첼란트의 초상을 올려놓기도 했다. 아티스트 출신이 아닌 미술인으로서 놀라울 만큼 폭넓은 애도를 받는 그의 창조적 여정을 돌아봤다.


1
2


지난 4월 말, 이탈리아 밀라노발 부고가 날아들었다. ‘프라다 재단은 제르마노 첼란트(Germano Celant)를 기억한다’는 제하의 갑작스러운 비보였다. 이어 ‘한국 최초의 미술 전문 기자’라는 칭호를 얻은 이구열 미술평론가의 별세 소식도 전해졌다. 이분들을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제르마노 첼란트는 아마도 스쳐가는 정도의 인연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리고 언젠가 한 번쯤 꼭 만나보고 싶은 인물이기도 했다. 세계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감상한 수많은 전시들 중 꽤나 강한 인상으로 남은 기획전을 여럿 이끈 큐레이터였고, 그 콘텐츠를 품는 멋진 공간을 창조하는 데 큰 몫을 담당한 ‘브레인’이었으며, 한 사람이 해냈다고는 믿기 힘든, 무려 2백 권이 넘는 미술 서적을 집필하거나 편집자로 참여했던 왕성한 저술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해 봄에는 제대로 만남을 가질 기회를 아쉽게 놓친 적이 있는데, 당시 그의 직책을 듣고는 궁금증이 더 커졌다. ‘Artistic and Scientific Superintendent’라는 딱히 번역하기도 힘든 희한한 타이틀을 쓰고 있다는걸 알게 되어서다. 어쩔 수 없이 미술계에서 쓰이는 ‘관장(director)’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언젠가부터 내부적으로는 그런 호칭이나 명함을 사양해왔다고 한다. 누군가가 ‘지휘(directing)’하는 개념보다는 같이 아이디어를 모으고 행동하는 집단 지성으로서의 면모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이자 수준 높은 전시 콘텐츠를 뽐내는 프라다 재단이 관용적으로 쓰이는 ‘뮤지엄(museum)’이라는 단어를 지양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그들은 문화 예술 플랫폼 역할을 하는 하나의 기관이나 센터로 여긴다). 아마도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지성의 소유자 제르마노 첼란트의 독특한 면모는 다분히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 프로젝트를 사랑하는 프라다 가문 사람들과 꽤 괜찮은 ‘궁합’을 이룰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큐레이터 등을 거쳐 1995년 프라다 재단에 합류한 이래 25년의 세월을 함께한 걸 봐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반세기 넘게 ‘전시의 역사’를 새로 써온 미술계의 큰 별
제르마노 첼란트는 일찌감치 미술계에서 이름을 떨친, 실력도 빼어난 데다 기회도 빨리 잡아챈 ‘행운아’다. 1967년 이탈리아 제노아 출신의 젊은 큐레이터이던 그는 5명의 예술가와 함께하는 전시를 기획했는데, 이때 스스로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가난한 예술’, ‘빈약한 예술’ 이라는 뜻의 아르테 포베라는 보잘것없는 재료와 단순한 과정을 의도적으로 활용하는 미술 운동으로, 이탈리아 아방가르드의 부활을 주창하면서 개념 미술, 환경 미술 등과 맥을 같이하면서 국경을 넘어 확산됐다. 그렇게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 1967년 전시에 참가한 작가들 중에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던 그리스 작가 야니스 쿠넬리스(Jannis Kounellis)가 있었는데, 제르마노 첼란트는 지난해 프라다 재단의 베니스 전시 공간에서 열린 쿠넬리스의 개인전을 자신이 큐레이팅을 총괄한 마지막 전시로 남기게 됐다. 사실 그의 눈부신 전시 이력을 지면에 담아내기란 대강이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프라다 재단에 들어간 뒤 전면적으로 맡은 첫 전시인 미국의 조각가이자 대지 미술가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 개인전(1996~1997)부터 시작해 주도적으로 참여했든 뒤에서 지원을 했든 당대를 수놓은 걸출한 재능들과 협업했다. 애니시 커푸어(Anish Kapoor),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 프란체스코 베촐리(Francesco Vezzoli), 배리 맥기(Barry McGee), 토비아스 레베르거(Tobias Rehberger), 리언 골럽(Leon Golub), 나탈리에 유르베리(Nathalie Djurberg) 등 일일이 언급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리고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기획전으로도 미술사에 남을 만한 공간형 콘텐츠의 자취를 만들어냈다. 그중 하나는 개념 미술을 앞세워 기존의 틀과 형식을 벗어남으로써 미술 전시의 패러다임을 바꾼 사례로 꼽히는 <When Attitudes Become Form>(1969)을 베니스에서 재현하고. 현재와의 연결을 시도한 2013년의 기획전(일명 ‘WABF69/WABF13’)이다. 또 이탈리아에 파시즘이 횡행했던 20세기 초반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격동을 아우른 기획전 <Post Zang Tumb Tuuum. Art Life Politics: Italia 1918–1943>도 그의 역작으로 평가된다. ‘창조자’로서의 큐레이터에 대한 인식을 심어준 제르마노 첼란트. 그의 전시는 다시 볼 수 없다 하더라도 그의 이름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곧잘 ‘품절’되곤 하는 그의 값진 저서와 도록이 여전히 숨 쉬고 있으니 말이다.


1996~1997

Michael Heizer_Milan

미국의 조각가이자 대지 미술가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 개인전(1996. 12. 15 ~1997. 1. 31). 제르마노 첼란트가 프라다 재단에 합류한 이래 처음으로 ‘큐레이팅’을 전적으로 맡은 전시다. 하이저가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가진 규모 있는 개인전이기도 했다. 하이저의 작품 세계는 지금은 라르고 이사르코로 옮긴 프라다 재단 미술관의 타워 건물에서 접할 수 있다.
photo CC – Courtesy Fondazione Prada
1999~2000

Walter de Maria_Milan

세계적인 대지 미술가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의 개인전(1999. 11.11~2000. 1. 4). 이 역시 월터 드 마리아가 첫 번째로 가진 개인전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창작된 조각 작품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전시했는데, 작가의 주요작인 ‘Cross’(1965), ‘Museums Piece’(1966), ‘Star’(1972), ‘Gold Meters’(1976), ‘Beds of Spikes’(1968~1969) 등을 여러 기관에서 공수해 왔다.
photo CC – Courtesy Fondazione Prada

2007

Tobias Rehberger ‘On Otto’_Milan

지난봄 서울 한남동에 있는 갤러리바톤에서도 열린 독일 현대미술가 토비아스 레베르거(Tobias Rehberger)의 개인전(2007. 4. 20~6. 6). 영상 같은 시각예술을 공간적으로 확장하고 관객의 반응을 지켜보는 토비아스 레베르거의 시도를 밀라노에서도 접할 수 있었던 전시다. 제르마노 첼란트와 작가의 심층 인터뷰 내용이 실린 도록도 소장할 만하다.
photo CC – Courtesy Fondazione Prada
2009

Prada Transformer_Seoul

프라다가 브랜드 차원에서 2009년 서울 경희궁에서 건축가렘 콜하스, 그리고 렘 콜하스가 이끄는 건축사무소 OMA 등과 공동으로 진행한 ‘프라다 트랜스포머’ 프로젝트(2009년3~7월). 크레인을 이용해 회전 가능한 4면체 구조물을 설치하고 패션, 영화, 미술 등의 콘텐츠를 선보였다. 제르마노 첼란트의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미술 부문은 프라다 재단이 맡았고, 당시 그도 한국을 찾았다.
photo CC – 사진 제공 프라다

2013

When Attitudes Become Form: Bern 1969/Venice 2013_Venice

프라다 재단의 근사한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한 베니스에 있는 유서 깊은 팔라초 ‘카 코르네르 델라 레지나(Ca’ Corner della Regina)’에서는 2013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전시가 열렸다(2013. 6. 1~11. 3). 1969년 베른 쿤스트할레에서 하랄드 스체만(Harald Szeemann)이 기획했던 혁신적인 전시를 재현하는 전시를 선보인 것. ‘태도가 형식이 될 때’라는 원래 제목을 딴 <When Attitudes Become Form: Bern 1969/Venice 2013>은 ‘현재의 공간에서 과연 베른에서 느낀 것과 같은 힘과 긴장을 불어넣는 게 가능한지’, ‘그러면서 어떻게 한계 없이 소통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반영된 프로젝트였고, 한 공간에 두 공간이 공존하게 하는 실험이기도 했다. 제르마노 첼란트, 렘 콜하스, 그리고 토마스 데만트(Thomas Demand)가 함께 기획을 맡았다.
photo CC – 왼쪽: Courtesy Fondazione Prada / 오른쪽: Photo by Attilio Maranzano Courtesy Fondazione Prada

2014

Art or Sound_Venice

예술과 소리 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대칭적이고 양면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춘 기획전(2014. 6. 7~11. 3).
제르마노 첼란트가 큐레이터 역할을 맡은 이 전시에서는 예술과 소리의 관계, 악기의 상징성, 아티스트와 뮤지션의 역할, 시각예술과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몽환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앨빈 루시에(Alvin Lucier)나 존 케이지(John Cage) 등 작곡가의 악기나 작품,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와 백남준 등 1960년대 예술가들의 작품 등 다양한 오브제와 작품이 전시됐다. Photo by Attilio Maranzano
photo CC – Courtesy Fondazione Prada
2015

Arts and Foods. Rituals Since 1851_Milan

‘지구 식량 공급, 생명의 에너지(Feeding the Planet, Energy for Life)’를 주제로 삼았던 2015년 밀라노 엑스포를 기념해 라트리엔날레(La Triennale) 미술관에서 열린 대형 기획전(2015. 4. 9~11. 1). 프라다 재단의 전시는 아니지만 제르마노 첼란트가 큐레이터를 맡아 ‘예술’과 ‘음식’을 둘러싼 1백60년가량에 걸친 다양한 관계를 회화, 디자인, 사진, 패션, 건축, 영화 등 여러 각도에서 심도 있게 탐구한 의미 깊은 기획전이다. Photo by SY Ko

2015~2016

An Introduction_Milan

밀라노 엑스포가 열린 2015년은 프라다 재단에도 특별한 해였다. 밀라노 남동쪽의 라르고 이사르코(Largo Isarco)에 새로운 전시 공간(Fondazione Prada Milano)이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기획전으로 여러 전시가 개최됐는데, 밀라노의 새 전시장에서는 <An Introduction>이 이듬해 초까지 계속됐다(2015. 5. 9~2016. 1. 10). 1993년 현대미술을 후원하는 재단을 운영해온 이래 다채로운 작가들과 함께해온 창조적 궤적을 반추해볼 수 있는 기획전이었다. 사진 속 작품은 피노 파스칼리(Pino Pascali)의 ‘Solitario’(1968). Photo by Attilio Maranzano
photo CC – Courtesy Fondazione Prada

2018

Post Zang Tumb Tuuum. Art Life Politics: Italia 1918–1943_Milan

이탈리아에 극우 파시즘이 횡행했던 20세기 초·중반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격동기를 아우른 기획전(2018. 2. 18~6. 25). 미래주의 시인이자 파시즘 이데올로기의 이론가인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가 20세기 초에 발표한 ‘사운드 시(Sound Poem)’에서 영감을 받아 전시명에 ‘장 툼 툼(Zang Tumb Tuuum)’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모국의 민감한 시기에 일어난 이슈와 문화를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조명한 전시로, 제르마노 첼란트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수작’으로 평가되는 대형 기획전이다. 문서만도 8백 개가 전시됐다. 전시 콘텐츠뿐 아니라 아카이브 자료로서 가치가 높아 도록도 구하기 힘들 정도. Photo by Delfino Sisto Legnani and Marco Cappelletti
photo CC – Courtesy Fondazione Prada

2019

Jannis Kounellis_Venice

프라다 재단의 베니스 전시 공간에서 지난해 열린 야니스 쿠넬리스(Jannis Kounellis, 1936~2017) 회고전(2019.
5. 11~11. 24). 아테네에서 태어났지만 로마에 정착해 전위미술 운동인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그룹의 대표 주자로 활약한 작가다.
제르마노 첼란트가 ‘아르테 포베라’라는 용어를 창안하게 된 1967년 전시 때 함께했다. 결국 첼란트가 마지막으로 큐레이팅한 전시의 대상이 됐다.
Photo by Agostino Osio – Alto Piano
photo CC – Courtesy Fondazione Prada



[ART+CULTURE ′20 Summer SPECIAL]

1. Intro_Mingling & Collision 보러 가기
2. Power of ‘Crew Culture’_Toolboy, Bandbower, 308 Art Crew, Pil-Dong Factory 보러 가기
3. 약자를 돌보는 예술 보러 가기
4. 프라다 파운데이션을 이끈 전설의 큐레이터, the artistic journey of Germano Celant 보러 가기
5. 창조적 지평을 넓히는 ‘진심의 공간’, 챕터투 야드+챕터투 보러 가기
6. ‘지속 가능성’의 가능성을 고민하다, 코사이어티 보러 가기
7. almost all about nick cave 보러 가기
8. Remember the EXHIBITION 보러 가기
9.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미술 생태계는 어디로 향할까? 보러 가기

댓글 남기기